이태원에서 알코올 모임. by NeoType

안녕하십니까, 네타입니다.
어제 저녁 간만에 이태원에서 가벼운(?)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뭐, "모임"이라곤 했지만 저와 제 블로그를 자주 찾아주시는 SJ 님과 연락이 닿아 딱 둘이서만 만난 자리라 모임이라고 부르기엔 거창하군요. 그래도 이날 둘이 마신 종류와 양(..)을 이제서야 생각해보면 그리 만만한 자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월 29일 일요일 저녁... 저는 마침 이날 일찍 퇴근하여 돌아오는 길에 이태원으로 직행해서 SJ 님을 만났습니다. 유럽 쪽에서 거주하시다 이제 귀국한 김에 면세점에서 구입한 싱글 몰트 하나를 같이 마시자는 이야기를 꺼내신 것이 계기가 되어 이날 뵙게 되었군요. 모처럼의 만남 자리이니 저도 저 나름대로의 위스키 잔과 와인, 싱글 몰트 등 무기(?)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보통 밖에서 가져간 술을 마실 때 주로 패밀리 레스토랑, 그것도 아웃백을 주로 찾습니다. 일반적인 바나 레스토랑 등에 술을 가져가면 아무래도 그 업소에 실례가 되기도 하고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가능하면 콜키지가 되면서 적당한 장소로 찾게 된 곳이 아웃백이기도 해서이지요. 실제로 와인 한 병 콜키지 가격이 1만원이라 크게 부담이 되지 않기도 하지요.

약간 늦은 저녁으로 적당한 요리 두 개를 주문하고 주섬주섬 가져간 잔 등을 세팅하고 본격적으로 술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이날 SJ 님이 가져오신 싱글 몰트로 Bunnahabhain, 켈트어로 "부나하바인" 정도로 읽는 독특한 이름의 위스키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 섬에 있는 동명의 증류소에서 만드는 싱글 몰트라고 하는군요. 특이하게도 숙성년도 표기가 없더군요. 용량은 위엄 넘치는 면세점표 1리터.(..)

처음 보는 것이기도 해서 매우 기대되는 마음으로 병을 열고 잔에 한 잔 따랐습니다. 아일레이 몰트이기에 아드벡이나 라프로익 등에서 연상되는 짙은 요오드 같은 피트향이 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느껴진 향은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보모어처럼 피트향이라기보단 산뜻한 과실 같은 프루티한 향이 부드럽게 퍼져 이거 아일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신선한 향이었습니다. 만약 이 위스키가 아일레이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희미한 피트향을 눈치 못 채고 하이랜드 지방의 위스키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군요.

부드러운 질감에 향긋한 풍미, 깔끔한 곡물맛에 희미하게 남는 피트향이 정말 멋진 위스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성년도 표기가 없지만 마시면서 느끼기론 약 12~15년 정도의 숙성이 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알코올 도수는 46.3도로 높은 편이지만 강하다기보단 부드러운 위스키라 피트향으로 표현되는 아일레이 위스키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에 충분한 한 잔이었습니다.

연이어 제가 준비한 위스키... 크래건모어(Cragganmore) 12년을 열었습니다.
이건 저도 시음회에서 한 잔 마셔보기만 했지 한 병을 가지고 마셔보지 않은 위스키라 마침 모임에 오는 길에 한 병 사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구입처는 제가 일하는 마트(..), 구입가는 6만 8천냥이었습니다.

바로 전 마신 아일레이 몰트의 맛이 하이랜드의 부드러운 싱글 몰트들이 연상되는 맛이었기에 크래건모어의 부드러운 맛에서 공통적인 인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질감과 달콤한 향이 마치 꿀이나 달콤한 과일향이 연상되고 퍼져가는 곡물향이 버터향이 감도는 듯한 기분 좋은 만족감이 느껴졌습니다. 크래건모어는 블렌디드 위스키인 올드 파 등 다양한 위스키들에 포함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나중에 천천히 다시 마셔보며 이곳에도 정리해보고 싶군요.


이렇게 두 가지 위스키를 한 잔씩 마신 후 제가 준비해간 와인을 열었습니다.

호주의 와이너리 중 하나인 얄룸바(Yalumba)의 쉬라즈 비오니에 블렌딩 와인으로 빈티지는 2006년이었습니다. 제가 꽤 좋아하는 와인이라 이제까지 4병 이상은 마셨지요. 수입사 책정 소비자가는 6만 8천원이군요.

얄룸바 와이너리는 호주의 바로사 밸리에 위치한 150년 이상 6대에 걸쳐 가족에 의해 유지되는 유서 깊은 와이너리인데 여러 모로 흥미로운 점이 많아 개인적으로 꽤 관심이 가는 와이너리입니다. 무엇보다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통을 직접 제작하는 와이너리인데 이렇게 통을 직접 제작하는 노하우를 가진 와이너리는 얼마 되지 않지요. 거기다 이 와인은 호주의 쉬라즈에 특이하게도 비오니에라는 청포도를 5~10%가량 블렌딩하는데 레드 와인을 만들면서 화이트 와인 품종을 포함시키는 경우도 프랑스 론 지역의 일부를 제외하곤 매우 희귀한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와인의 맛도 묵직하고 강한 쉬라즈 와인의 질감과 함께 상큼하고도 향기로운 과실 풍미가 더해져 독특한 맛이 나지요. 얄룸바 와이너리는 이 비오니에 품종 역시 최초로 호주에 정착시킨 와이너리인만큼 이쪽 방면의 노하우도 충분히 갖춘 와이너리라 할 수 있습니다.

와인을 열고 이런저런 주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분 좋게 마시다보니 어느 새 한 병이 비었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다음으로 간 장소는 제가 이태원에서 자주 찾는 칵테일 바로 해밀턴 호텔 뒷골목에서 살짝 떨어진 곳의 2층에 위치한 더 방갈로(the Bangalow)였습니다. 분위기 적으로도 마음에 들고 칵테일들도 마음에 들어 혼자서도 자주 찾아 카운터 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즐겁게 마시고 오는 곳이지요.

여기서 저는 우선 첫 잔을 드라이 마티니로 주문하는데 주로 탱커레이 진을 써서 만들어주기에 꽤 마음에 듭니다. 최근 자주 찾아가지 않아 오랜만에 카운터 바에 앉았는데 친숙한 바텐더 언니도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저와 SJ 님이 가지고 있던 위스키도 조금 따라 시음도 하며 기분 좋게 마셨습니다. 연이어 애플 마티니 한 잔, 그리고 또 연이어 코스모폴리탄의 변형인 "메트로폴리탄"을 한 잔 마셨는데 마지막에 서비스로 럼을 한 잔 마시게 되었습니다.

실내가 어두운 편이라 폰카도 화질이 좀 안 좋군요.

마투살렘(Matusalem)이라는 쿠바의 럼으로 이름만 들어보고 아직 마셔본 적이 없던 럼이었는데 이걸 서비스로 한 잔 받으니 마지막까지 최고의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묵직한 꿀을 머금은 듯한 독특한 단맛이 느껴지는 럼이었는데 한창 다른 술을 마신 후 마신터라 맛을 최대한 즐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나중에 또 바에 찾아가 정식으로 한 잔 주문해보고 싶군요.


여러 모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유럽에서 지내다 오신 SJ 님에게서 유럽 본토의 여러 가지 생생한 알코올 라이프(..) 이야기를 듣고 좋은 술도 많이 즐겼으니 짧지만 충실한 시간이였지요. 정말 술이란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분들과 함께 마시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러한 자리를 자주 마련해보고 싶습니다.

[스페인, RED] 마스 라 플라나 (Mas La Plana) 1989 by NeoType

안녕하십니까, 네타입니다.
오늘은 모처럼 쉬는 날... 여유 있게 와인을 하나 땄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물건이지요.

예전에 이곳에서 소개한 적이 있었던 스페인의 레드 와인인 토레스(Torres) 와이너리의 마스 라 플라나(Mas La Plana)의 1989년을 개봉했습니다.

마스 라 플라나... 예전에 이 와인의 2007년을 마시고 올렸던 글이 있었는데 거기서 언급했었던 1989년을 오늘에야 개봉했습니다. 모처럼 한가한 날이니 오래된 와인을 한 번 제대로 마셔보자~ 라는 생각으로 병을 열 결심을 했군요.

Mas La Plana란 "초원의 집"이라는 뜻의 와인으로 스페인의 동부, 바로셀로나 근방에 위치한 와인 생산지인 페네데스(Penedes) 지역에 위치한 동명의 포도원인 "마스 라 플라나"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입니다. 와인의 이름이 그랑 코로나스(Gran Coronas)라고 되어 있고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토레스의 그랑 코로나스라는 와인도 존재하지만 마스 라 플라나 포도원의 까베르네 소비뇽 100%로 만든 와인이기에 오늘날 판매되는 100%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인 마스 라 플라나와 동일한 종류의 와인이라 봐도 무방하지요. 여담으로 그랑 코로나스라는 와인은 까베르네 소비뇽과 스페인 토착 품종인 뗌프라니요(Tempranillo)의 블렌딩입니다.

전에 마셨던 2007년.
정확히 말하면 저는 이 1989년을 구입한게 먼저이고 이걸 따기 전에 최신 빈티지를 마셔보자는 생각에 이 2007을 구입해서 먼저 마셔본 것이지요. 수입사 책정 소비자가 88000원이고 대략 7만원 중반대에 구입하긴 했지만 가볍게 구입하기엔 쉽사리 지불하기 어려운 가격대의 와인을 두 개나 사버린 꼴이었지만 토레스라는 회사에 흥미도 있었고 1989년쯤 되면 좀처럼 구하기 힘든 빈티지이니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2007년은 매우 만족스러운 맛이었지요.

1989년 빈티지... 그냥 써놓고 보면 별것 아니지만 딱 오늘 기준으로 약 23년 전에 만들어진 와인이라 생각하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군요. 89년이라면 저는 아직 유치원도 안 들어간 꼬맹이였는데 그때 만들어진 와인이 바로 이렇게 눈 앞에 있다 생각하면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듭니다.

오래된 와인이라곤 했지만 라벨은 매우 깨끗한데 병 뒷면 라벨에 쓰여 있는 내용에 따르자면 2004년 7월에 코르크를 교체했다는 내용이 적힌 걸 보면 그때 라벨도 새로 붙인 것이라 추정되는군요. 덤으로 내용을 더 옮겨보면 이 와인은 1989년 9월 19일에 수확한 포도로 최초 와인을 만들고 이를 프렌치 오크, 미국 오크 두 가지를 이용해 두 번 숙성시킨 후 1991년 2월에야 병입했다고 하는군요. 최초 와인 발효 기간을 생각해보면 최소 15~16개월 이상은 오크 숙성을 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군요.

뭐,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었지만 저는 이제까지 이 정도로 오래된 와인을 직접 다뤄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대략적인 지식일 뿐이지만 오래된 레드 와인은 기본적으로 침전물이 생길 것이고 그대로 병에서 잔에 따르면 침전물이 흔들려 병 전체에 퍼질 것이라 생각하고 디캔터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 와인을 구입해서 셀러에 넣은 후 이제까지 최소 5개월 동안은 손도 안 대고 그대로 눕혀 뒀으니 침전물은 병 한쪽에 잘 모였을 것이라 생각하고 조심스레 셀러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세워서 한 시간 정도 가만히 내버려뒀습니다. 좀 더 제대로 하자면 와인 바구니인 빠니에(Panier)에 눕혀두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저는 빠니에가 없기에 최대한 침전물을 가라앉히는 것에만 신경 썼습니다.

천천히 알루미늄 캡을 찢고 코르크를 빼냈습니다. 2004년에 코르크를 새걸로 교체했다는 설명처럼 코르크도 매우 깨끗한 편이었습니다.

그 후 디캔터를 놓고 파라핀 초를 켜놓고 천천히 비춰가며 와인을 디캔터로 옮겼습니다. 이때 촛불을 켜는 이유는 병 입구에서 따라져 나오는 와인에 침전물이 같이 나오는지를 잘 관찰하기 위함이군요.

천천히 와인을 디캔터에 옮기던 중 마지막에 침전물이 보이기 시작해 따르는 것을 멈췄습니다. 병 바닥에 약간 남은 와인에 침전물이 한가득 모여 있는 것이 보이지만 사진상으론 아무래도 제대로 보이진 않는군요.

디캔터에 옮긴 와인을 잠시간 그대로 둔 후 잔에 한 잔...
색상은 오래된 와인 특유의 벽돌색에 가까운 밝은 갈색이 돌긴 하지만 아직 충분히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신선하고도 맑은 빛을 띠고 있습니다. 전에 마셨던 젊은 빈티지인 2007년에서는 진한 송로 버섯향에 습지가 연상될 정도로 짙은 나무향과 흙내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1989년에선 향 자체는 크게 두드러지게 퍼지진 않습니다. 대신 잔 주변에서 희미하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오래된 흙내음에 가죽 같은 향에 아직 이 와인은 힘차게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느껴지는 맛은 약간 산도가 올라오기 시작해 전체적으로 조금 신맛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직 충분히 마실 수 있는 맛이었습니다. 와인 자체의 질감은 매우 부드러워졌는데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풀바디감에는 못 미치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무거운 나무향에 버섯향, 검붉은 자두가 연상되는 과실의 풍미, 희미하게 느껴지는 스모키한 여운 등 와인 자체의 본질과 개성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디캔터에 옮긴지 2시간이 지나도 맛 자체는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처음에 느껴지던 신맛이 점점 가라앉아 좀 더 마시기 쉬운 맛으로 변해갔습니다. 신맛이 가시자 와인 자체의 과실 풍미가 한층 직접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23년이란 세월에서 오는 중후함과 오래도록 퍼져가는 긴 여운이 느껴져 정말 큰 포텐셜을 가진 와인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한 이야기로 와인의 맛 자체는 단순히 "맛있다."라고 말하긴 힘든 맛입니다. 얼핏 느끼기론 신맛이 느껴지는 맛 없는 와인이라고 여겨버릴 수도 있는 와인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이제 마실 수 있는 절정은 지나갔지만 완전히 꺾이지는 않은, 마지막 한 순간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한 와인이었습니다.

와인의 맛 자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렇게 오래된 와인을 직접 열어보고 다뤄보고 그리고 천천히 마셔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이것만으로 큰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아마 이제 시중에서 이 마스 라 플라나 1989년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이런 와인을 구해서 직접 마셔봤다는 사실 한 가지는 확실히 남아있으니 저에겐 큰 의미가 있는 와인이라 할 수 있겠군요.

[위스키] 조니 워커 블루 라벨 (Johnnie Walker Blue Label) by NeoType

안녕하십니까, 네타입니다.
이미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즘 이래저래 집에 붙어 있을 시간도 없이 정신 없다가 드디어 구정 연휴를 맞아 간만에 여유 있는 시간이 찾아왔군요. 이제 웬만큼 매장에서의 행사는 끝났으니 남은 건 뒷정리 정도라 당분간은 여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 저는 예전부터 언젠간 따야지~ 따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어떤 술을 개봉했습니다. 오래 전 선물 받은 이래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는 날이거나 기념할만한 시기에 열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술인데 요즘 한 가지 저 자신에게 축하하는 의미로 확 열어버렸군요.

좋은 일이라 하면 이제 정식으로 제가 소속되어 있던 와인 회사의 정직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진 반쯤 회사엔 이름만 걸어놓고 이마트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이젠 정식으로 "나라 와인"의 직원으로서 정직원 대우를 받으며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턴 지금까지 일했던 것보다 더욱 열심히 일하고 또 공부도 해서 좀 더 인정받을 수 있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술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미 제목으로 이야기해버렸지만 이번에 개봉한 술은 바로 조니 워커(Johnnie Walker)의 최상급품인 블루 라벨(Blue Label)입니다. 뭐, 이미 거의 다 마셔서 반병 정도밖에 안 남았군요;

용량 750ml, 알코올 도수 43도인 표준품입니다.
예전에 선물 받은 패키지 그대로 술장 한켠에 보관해두다가 최근 포장을 뜯고 바로 그 자리에서 개봉했습니다. 모든 술이 그렇지만 개봉하는 순간은 항상 기대감에 두근두근하는데 이 블루는 역시 직접 뜯는 손맛이 각별하더군요.

조니 워커 블루 라벨... 두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블렌디드 스카치 중 하나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위스키지요. 가끔 어딘가에서 한두 잔 정도 얻어 마시거나 했지만 역시 한 병을 가지고 마시는 것과는 기분부터 다른 만큼, 언젠가 한 병을 마련해 앞에 놓고 천천히 처음부터 끝까지 즐겨보고 싶은 술이었기에 이제야 소원 하나를 푼 느낌입니다. 이제까지 조니 워커의 레드부터 블랙, 그린, 골드 라벨까지 전 레이블을 한차례 훑으며 마침내 블루까지 도달한 느낌이라 이 기분이 또 어딘가 감회가 느껴지는군요.

스코틀랜드의 남서부 에어셔(Ayrshire) 주의 동부에 위치한 킬마넉(Kilmarnock)에서 생산되는 조니 워커의 위스키들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한 가장 많이 팔리는 스카치 위스키라 해도 무리가 없지요.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스카치 위스키들이라면 조니 워커 외에 발렌타인(Ballantine's)이나 시바스 리갈(Shivas Regal) 등의 위스키들도 큰 인기를 얻고 있고 실제로 이들도 훌륭한 품질로 이름 높지만 세계적인 인지도나 인기 면에선 조니 워커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조니 워커 블루 라벨은 조니 워커 위스키의 정점이라 할 만하며 각종 주류 품평회에서도 수많은 상을 수상하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스카치 중 하나입니다.

이 블루 라벨은 조니 워커의 다른 라벨들인 블랙, 골드 등이 그 숙성년도를 병에 표기하는 것과 달리 숙성년도 표기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라벨에 새겨져 있는 "A BLEND OF OUR VERY RAREST WHISKIES"라는 문구에서 조니 워커에서 특별히 선별한 위스키들을 블렌드한 것임은 알 수 있지만 정확한 내용물이나 주요 키 몰트 등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처음 블루 라벨을 만든 것은 조니 워커의 마스터 블렌더인 짐 베버리지(Jim Beveridge) 씨라 하며 그는 전후무후한 최고의 스카치 위스키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이 블루 라벨을 내놓았다 합니다. 레어 위스키(Rare Whisky), 다시 말해 희귀하며 독특한 위스키들을 선별해 이를 역시 마찬가지로 직접 감별한 오크통에서 숙성시켜 완성한다는,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이 모든 과정과 다양한 위스키들의 특성과 조합을 고려한 블루 라벨은 조니 워커 위스키의 정점이라는 그 표현이 딱 맞습니다.

짐 베버리지 씨는 좋은 위스키를 만드는 블렌더의 역할은 단순히 "향과 맛의 조화를 느끼며 이해"하는 기술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얼마나 서로 다른 위스키들을 섞어 서로간의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한층한층 맛과 향을 깊이 있게 "엮어내는가"를 중시했다 합니다. 한통 한통에 담긴 위스키들은 설령 같은 종류의 위스키일지라도 서로 다른 독자적인 위스키이며 숙성년도가 다른 이들을 어떻게 선별하여 어떠한 비율로 혼합해야 서로간의 경계를 깨뜨리지 않고 최고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고려하였다 하니 이 블루 라벨에 들어간 정성이 상당함을 짐작할 수 있지요. 마스터 블렌더 짐 베버리지 씨는 이런 말을 했다 하는군요.

"I think of blending as being like the process of writing. Is the final book just a series of words, a lot of facts and information, or has it been put together with care and attention so that the end result will relate to the person who reads it? If it does, then that, you could argue, is magic blending, like writing, like any creative process, is much more involved in the world of ideas, with trying to connect with the whisky drinker. I like to think that we have made that connection with our whiskies."

"저는 위스키 블렌딩이 글을 쓰는 작업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완성된 책이 그저 수많은 사실과 정보 등의 나열에 불과한가, 아니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해질 것인가? 글을 쓰는 것처럼 세상의 생각들을 연관짓는 다양한 창작 과정들과 마찬가지로 위스키 블렌딩은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과 "연결(connection)"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저는 저희의 위스키들이 이러한 "연결"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엄청난 의역이 들어가긴 했습니다만 의미는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레어 위스키"들의 블렌딩으로 만들어진 블루 라벨은 말 그대로 숙성년도가 다양한 여러 위스키들이 포함되었기에 숙성년도 표기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딘가에서 본 자료에 따르면 블루 라벨에 블렌딩되는 위스키들 중에는 길게는 60년 이상 숙성된 말 그대로 "희귀품" 역시 포함된다 하니 조니 워커 위스키의 정점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지요.

병의 하단 라벨에 새겨진 "Our blend cannot be beat."라는 문구는 이러한 조니 워커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블루 라벨들은 다른 라벨들과 달리 소량씩 생산되는 관계로 병 하나하나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제가 가진 것은 블루 라벨이 출시된 이래 "550625번째" 병이라 생각할 수 있겠군요.

우리나라에서도 워낙 "블루 라벨"이라는 이름이 발렌타인 30년, 로얄 살룻 21년 등 "고급 위스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에 어떤 의미론 아주 친숙한 술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유명세만으로 알고 있기보단 일단 마셔보면 이것이 왜 좋은 술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 유명해졌는지 한층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 늘 하는 생각인 "싸구려를 알아야 좋은 물건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와 비슷하게 "좋은 물건을 접해봐야 왜 싼 물건이 싼 물건인지" 알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요즘은 와인이나 위스키들도 일부러 다소 고가이더라도 좋다고 하는 물건들을 찾아보며 다니고 있습니다.

병 입구쪽을 한 장.
어지간한 고급 위스키들은 코르크 마개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 코르크 뚜껑을 덮은 알루미늄 캡은 그냥 찢어버리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렇게 보면 이런 세세한 부분에까지 신경썼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JW라 새겨진 납봉이 붙은 끈이 캡 안쪽에 둘러져 있어 이걸 이용해 캡을 찢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볍게 당겨서 캡을 벗겨냅니다.
저 끈과 납봉은 한 번 쓰고 버릴 물건이긴 해도 의외로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오히려 쓸모는 없더라도 그대로 병에 둘러두어도 괜찮을 것 같더군요.

아무리 찬사가 넘치는 위스키라도 일단 마셔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요.
색상은 진한 갈색으로 모든 라벨의 조니 워커 위스키들 중 가장 진합니다. 병을 개봉해 처음 잔에 따를 때부터 이 향이 온 집안에 한가득 퍼져가는군요. 코를 잔 가까이 가져가자 느껴지는 풍미는 "다채롭다" 한 마디로 표현 불가능한 여러 향이 다양하게 느껴집니다. 싱그럽고 산뜻한 과일향에서부터 살짝 고소한 견과류나 토스트가 생각나는 풍미, 부드러운 나무향에 꽃과도 같은 화사함, 심지어 아일레이 몰트에서 느낄 수 있는 피트향도 은근히 느껴집니다. 향만으로도 정말 다양한 생각이 떠오르는 위스키입니다.

잔을 입에 가져가 가볍게 한 모금... 부드러우면서도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이 풍미도 역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군요. 첫맛은 거슬림 없이 꿀처럼 부드럽게 혀에 퍼지는 질감이 느껴지다 한순간 강렬하게 입안에 피어나는 화려한 향과 진한 곡물의 느낌에 이어서 찾아오는 부드러운 오크향의 풍미가 느껴집니다. 가볍게 머금고 굴리며 목을 넘기니 찾아오는 여운이 살짝 혀 안쪽을 자극하고 코 안쪽에 떠도는 꽃 향과도 비슷한 향기로움이 계속해서 떠도는군요. 위스키를 마시고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휘력의 부족을 절실히 느낄 정도로 정말 멋진 위스키라고밖에 못 하겠군요.

지금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블루 라벨이 최고라 불리우는지, 그리고 단순히 "최고급품"이라는 상징적인 의미 외에도 블루 라벨에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현재 보유중인 조니 워커의 라벨들... 현 시점에서 저는 조니 워커의 한정품인 각종 스페셜 에디션 등을 제외한 일반품 중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위스키들을 거의 다 가지고 있군요. 여기에 없는 품목이라면 일단 스윙(Swing)이라는 보틀이 있지만 병 모양부터 다르고 이들과는 기획 의도부터 살짝 차이가 있는 상품인 만큼 나중에 이 스윙은 따로 다뤄보려 합니다.

그러고보니 최근엔 블랙 라벨의 한 단계 윗등급이라 할 수 있는 더블 블랙(Double Black)과 골드 라벨의 상급품인 플래티넘 라벨(Platinum Label)이란 것까지 국내 출시되어 조니 워커도 그 종류가 상당히 늘어났습니다. 이중 플래티넘 라벨은 듣기로는 아시아 지방에만 한정적으로 발매한 숙성년도 18년 블렌디드 위스키로 사실상 골드와 비슷하면서 전혀 다른 위스키라 하니 흥미가 생기더군요.

아직 저는 더블 블랙은 한 잔을 시음 형태로 마셔봤을 뿐이지만 일반 블랙과는 다른 은근히 깊은 스모키함이 느껴져 나중에 이 더블 블랙도 직접 구해볼 생각입니다.

이 블루 라벨의 일반적인 소비자 가격은 약 24~27만원 내외로군요. 물론 구입처에 따라 이보다 싸게 살 수도, 비싸게 살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외국 인터넷 주류 판매 사이트 등을 돌아봐도 200달러 내외로 거래되는 만큼 이것이 정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고급품이라는 명성뿐 아니라 실제로 그 품질을 느껴보니 스카치 블렌디드 위스키의 예술이라 불리우는 명성은 과연 명불허전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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