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2일
[위스키] 글렌리벳 12년 (The Glenlivet 12 Year old)
제 블로그만 그런건지 몰라도 요즘 블로그 자체가 여러 모로 꽤나 불안정합니다.
덧글을 입력하면 예전같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덧글이 나타났으나 요즘은 새로고침을 해야 제대로 뜨고, 답글의 경우에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잘 되는가 싶다가 또 안 되는군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조언을 주셨던 것처럼 스킨을 신나게 뜯어고쳐보고 아예 새로운 2.0스킨으로 바꿔보기도 했는데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이번에 새로 바뀐 스킨은 제게 있어선 꽤나 편집이 불편했고 마음에 드는 대로 바꾸기 힘들어 그냥 다시 예전 스킨으로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이 달아주신 덧글에 답글들을 달아드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군요. 성격상 답글이 안 달린 덧글을 그냥 못 보기에 요즘 좀 아쉽습니다;
그나저나 앞으로 한동안은 제가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기에 블로그 관리는 물론 웹 서핑도 못할 것 같습니다. 대략 2월 중순까진 자리를 비우게 되겠습니다. 그동안은 새로운 글은 쓰지 못하겠군요.
뭐... 오늘은 서두가 길었군요.
저번 주에 이어 오늘도 싱글 몰트 상표 하나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요즘은 어쩐지 싱글 몰트 쪽에 관심이 생겨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고 최근엔 아드벡(Ardbeg), 라프로익(Laphroaig) 등 독특한 향과 맛으로 유명한 아일레이(Islay)의 몰트들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어 꽤나 다양한 종류의 몰트들을 접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것은 글렌리벳(The Glenlivet)으로 저번에 이야기한 맥켈런(The Macallan)과 더불어 스코틀랜드 하이랜드(Highland)의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을 대표하는 몰트 중 하나로군요.
그 중 12년산인 글렌리벳 12년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표준적인 40도, 용량은 700ml입니다.
The Glenlivet. 예전에 글렌모렌지(The Glenmorangie)를 소개할 때 했었던 이야기입니다만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수많은 증류소들은 이렇게 "Glen-"으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습니다. 대중적인 싱글 몰트이자 세계적으로 최다 몰트 판매량을 자랑하는 글렌피딕(Glenfiddich)을 비롯하여 글렌모렌지, 오늘 이야기할 글렌리벳, 글렌파클라스(Glenfarclas) 등 이 "Glen"이라는 말은 켈트어로 "좁은 산골짜기, 좁은 계곡"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위스키를 만드는 재료는 원료가 되는 몰트 및 옥수수 등의 곡물, 완성한 술을 숙성시키는 나무통, 그리고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물입니다. 모든 술이 그렇지만 술의 큰 비율을 차지하는 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재료라 볼 수도 있군요. 즉, 이러한 중요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야말로 위스키를 만드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의미로 많은 증류소가 이러한 이름을 붙인다고 하는군요.
"글렌리벳"이라는 이름은 "리벳 강(River Livet)이 흐르는 계곡(glen)"이라는 뜻이라 하며 바로 이 글렌리벳 증류소가 위치한 환경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리벳 강은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를 따라 흐르는 큰 강인 스페이 강(River Spey)에서 갈라진 한 지류(支流)입니다. 이 스페이 강은 예로부터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위스키 제조에 큰 역할을 해온 강이자 송어 낚시 등으로 유명하다 하는군요.
오늘날의 글렌리벳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싱글 몰트이며 세계적으로는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리는 위스키라 합니다. 세계 판매 1위는 글렌피딕이라 하는군요. 그러나 "싱글 몰트 위스키는 글렌리벳에서 시작되었다."라고도 할 정도로 글렌리벳은 역사 깊은 증류소 중 하나로 1824년 최초로 "허가받은 증류소"라는 점으로 또 유명합니다. 또한 오래된 만큼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많았고 얽힌 이야기도 참 많은 증류소라 하겠습니다.
19세기 초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에는 수많은 증류소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증류소들은 특별한 허가를 받지 않고 예전부터 계속해서 영업을 해오던 증류소들로 1823년도에 새로운 면허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위스키를 제조해서 판매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1823년 이후로는 허가를 받지 않은 증류소는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증류업자들은 이러한 세금을 피하기 위해 허가를 받지 않고 계속해서 영업을 해나갔고 이중에는 글렌리벳 증류소도 있었습니다.
최초 글렌리벳 증류소는 조지 스미스(George Smith)라는 사람이 세운 증류소로, 다른 많은 증류소들이 위스키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수원(水原)에서 가깝고 상품을 쉽게 옮기기 위해 도로나 철도 부근에 세워진 것에 반해 글렌리벳은 케언곰 산맥(Cairngorms)의 험준한 산기슭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러한 외지고 험난한 지형 때문에 당시 비인가로 운영되던 글렌리벳 증류소였으나 세금 징수원들도 좀처럼 들르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거기다 밀수업자들도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구입해서 가는 것도 큰 고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위스키를 마셔본 귀족들이 이 맛과 부드러움에 심취하여 크게 인기를 끌고 위스키에 대한 찬사를 하여 글렌리벳은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합니다.
글렌리벳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예는 1822년 잉글랜드의 왕 조지 4세(King George Ⅳ)의 스코틀랜드 방문 환영식에서 있었다 합니다. 당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화해를 위해 방문한 조지 4세를 환영하기 위해 에딘버러(Edinburgh)의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 행렬이 있었다 하며, 이때 환영 행사에서 조지 4세는 문득 글렌리벳을 한 잔 달라고 했다 합니다. 주변은 깜짝 놀랐고 급히 그들이 늘 마시던 위스키인 글렌리벳을 가져와서 조지 4세에게 한 잔 대접했습니다. 이를 한 잔 마셔본 왕은 위스키에 대해 큰 찬사를 했으며 한 잔을 더 줄 것을 원했다 합니다.
그렇게 1823년이 되어 새로운 면허법이 제정되었고 허가를 받지 않은 증류소들은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증류소들은 계속해서 몰래 영업을 계속했으나 글렌리벳은 바로 이 새로운 면허법을 받아들여 최초로 허가를 받은 증류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법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많은 증류업자와 밀수업자들은 허가를 받은 글렌리벳 증류소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거기다 글렌리벳의 위스키를 마셔보고는 이대로는 자신들이 사업에서 밀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글렌리벳 증류소는 방화, 살해위협 등으로 창업자인 조지 스미스 씨는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거기다 글렌리벳 증류소의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그 주변은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합니다. 이에 아벨라워(Aberlour)의 지주는 허가받은 증류소 주인인 조지 스미스를 보호하기 위해 그에게 한 쌍의 권총을 선사했고 조지 스미스 씨는 이 두 자루를 항시 몸에 소지하고 다녔다 합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과 증류소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고 싸우기도 했고 결국 방해하던 사람들도 더 이상의 위협을 그만두게 되었다 합니다.
오늘은 꽤 이야기가 길었군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술이기에 이토록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마셔보는 것. 잔에 한 잔 따랐습니다.
스르르 피어오르는 향을 가만히 맡고만 있어도 꽤 만족스러운 느낌이 드는군요. 마치 사과 종류같은 산뜻한 과일과도 비슷한 향이 강렬하다기보단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스르르 퍼져가는 느낌입니다. 입에 조금 머금으면 혀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부드러운 촉감과 마치 생크림을 조금 핥은 듯한 질감이 입 안 가득 느껴집니다. 그렇게 조금 입에서 굴리며 목구멍을 꿀꺽 넘기면 그제서야 견과류와도 같은 나무향이 짜릿하게 퍼지고 마치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와도 비슷한 고소한 느낌이 코와 입 안에서 맴돌아서 아주 만족스러운 맛이 납니다. 그야말로 금방 구운 빵을 한 입 베어 문 듯한 만족감과도 비슷한 느낌이라 하겠습니다.
가격대는 보통 70000~90000원대에 구하실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베스트셀러 싱글 몰트"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위스키라 하겠습니다. 위스키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누가 마셔도 "맛있다."라는 느낌이 들게 되는 술이군요.
여러 이야기가 얽혀있는 역사 있는 술이라는 점도 한몫해서인지 그 맛이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글렌리벳의 12년 이상의 술들도 접해보고 싶군요.
덧글을 입력하면 예전같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덧글이 나타났으나 요즘은 새로고침을 해야 제대로 뜨고, 답글의 경우에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잘 되는가 싶다가 또 안 되는군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조언을 주셨던 것처럼 스킨을 신나게 뜯어고쳐보고 아예 새로운 2.0스킨으로 바꿔보기도 했는데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이번에 새로 바뀐 스킨은 제게 있어선 꽤나 편집이 불편했고 마음에 드는 대로 바꾸기 힘들어 그냥 다시 예전 스킨으로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이 달아주신 덧글에 답글들을 달아드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군요. 성격상 답글이 안 달린 덧글을 그냥 못 보기에 요즘 좀 아쉽습니다;
그나저나 앞으로 한동안은 제가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기에 블로그 관리는 물론 웹 서핑도 못할 것 같습니다. 대략 2월 중순까진 자리를 비우게 되겠습니다. 그동안은 새로운 글은 쓰지 못하겠군요.
뭐... 오늘은 서두가 길었군요.
저번 주에 이어 오늘도 싱글 몰트 상표 하나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요즘은 어쩐지 싱글 몰트 쪽에 관심이 생겨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고 최근엔 아드벡(Ardbeg), 라프로익(Laphroaig) 등 독특한 향과 맛으로 유명한 아일레이(Islay)의 몰트들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어 꽤나 다양한 종류의 몰트들을 접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것은 글렌리벳(The Glenlivet)으로 저번에 이야기한 맥켈런(The Macallan)과 더불어 스코틀랜드 하이랜드(Highland)의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을 대표하는 몰트 중 하나로군요.
그 중 12년산인 글렌리벳 12년입니다.

The Glenlivet. 예전에 글렌모렌지(The Glenmorangie)를 소개할 때 했었던 이야기입니다만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수많은 증류소들은 이렇게 "Glen-"으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습니다. 대중적인 싱글 몰트이자 세계적으로 최다 몰트 판매량을 자랑하는 글렌피딕(Glenfiddich)을 비롯하여 글렌모렌지, 오늘 이야기할 글렌리벳, 글렌파클라스(Glenfarclas) 등 이 "Glen"이라는 말은 켈트어로 "좁은 산골짜기, 좁은 계곡"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위스키를 만드는 재료는 원료가 되는 몰트 및 옥수수 등의 곡물, 완성한 술을 숙성시키는 나무통, 그리고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물입니다. 모든 술이 그렇지만 술의 큰 비율을 차지하는 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재료라 볼 수도 있군요. 즉, 이러한 중요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야말로 위스키를 만드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의미로 많은 증류소가 이러한 이름을 붙인다고 하는군요.
"글렌리벳"이라는 이름은 "리벳 강(River Livet)이 흐르는 계곡(glen)"이라는 뜻이라 하며 바로 이 글렌리벳 증류소가 위치한 환경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리벳 강은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를 따라 흐르는 큰 강인 스페이 강(River Spey)에서 갈라진 한 지류(支流)입니다. 이 스페이 강은 예로부터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위스키 제조에 큰 역할을 해온 강이자 송어 낚시 등으로 유명하다 하는군요.
오늘날의 글렌리벳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싱글 몰트이며 세계적으로는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리는 위스키라 합니다. 세계 판매 1위는 글렌피딕이라 하는군요. 그러나 "싱글 몰트 위스키는 글렌리벳에서 시작되었다."라고도 할 정도로 글렌리벳은 역사 깊은 증류소 중 하나로 1824년 최초로 "허가받은 증류소"라는 점으로 또 유명합니다. 또한 오래된 만큼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많았고 얽힌 이야기도 참 많은 증류소라 하겠습니다.

최초 글렌리벳 증류소는 조지 스미스(George Smith)라는 사람이 세운 증류소로, 다른 많은 증류소들이 위스키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수원(水原)에서 가깝고 상품을 쉽게 옮기기 위해 도로나 철도 부근에 세워진 것에 반해 글렌리벳은 케언곰 산맥(Cairngorms)의 험준한 산기슭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러한 외지고 험난한 지형 때문에 당시 비인가로 운영되던 글렌리벳 증류소였으나 세금 징수원들도 좀처럼 들르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거기다 밀수업자들도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구입해서 가는 것도 큰 고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위스키를 마셔본 귀족들이 이 맛과 부드러움에 심취하여 크게 인기를 끌고 위스키에 대한 찬사를 하여 글렌리벳은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합니다.
글렌리벳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예는 1822년 잉글랜드의 왕 조지 4세(King George Ⅳ)의 스코틀랜드 방문 환영식에서 있었다 합니다. 당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화해를 위해 방문한 조지 4세를 환영하기 위해 에딘버러(Edinburgh)의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 행렬이 있었다 하며, 이때 환영 행사에서 조지 4세는 문득 글렌리벳을 한 잔 달라고 했다 합니다. 주변은 깜짝 놀랐고 급히 그들이 늘 마시던 위스키인 글렌리벳을 가져와서 조지 4세에게 한 잔 대접했습니다. 이를 한 잔 마셔본 왕은 위스키에 대해 큰 찬사를 했으며 한 잔을 더 줄 것을 원했다 합니다.
그렇게 1823년이 되어 새로운 면허법이 제정되었고 허가를 받지 않은 증류소들은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증류소들은 계속해서 몰래 영업을 계속했으나 글렌리벳은 바로 이 새로운 면허법을 받아들여 최초로 허가를 받은 증류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법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많은 증류업자와 밀수업자들은 허가를 받은 글렌리벳 증류소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거기다 글렌리벳의 위스키를 마셔보고는 이대로는 자신들이 사업에서 밀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글렌리벳 증류소는 방화, 살해위협 등으로 창업자인 조지 스미스 씨는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거기다 글렌리벳 증류소의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그 주변은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합니다. 이에 아벨라워(Aberlour)의 지주는 허가받은 증류소 주인인 조지 스미스를 보호하기 위해 그에게 한 쌍의 권총을 선사했고 조지 스미스 씨는 이 두 자루를 항시 몸에 소지하고 다녔다 합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과 증류소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고 싸우기도 했고 결국 방해하던 사람들도 더 이상의 위협을 그만두게 되었다 합니다.

스르르 피어오르는 향을 가만히 맡고만 있어도 꽤 만족스러운 느낌이 드는군요. 마치 사과 종류같은 산뜻한 과일과도 비슷한 향이 강렬하다기보단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스르르 퍼져가는 느낌입니다. 입에 조금 머금으면 혀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부드러운 촉감과 마치 생크림을 조금 핥은 듯한 질감이 입 안 가득 느껴집니다. 그렇게 조금 입에서 굴리며 목구멍을 꿀꺽 넘기면 그제서야 견과류와도 같은 나무향이 짜릿하게 퍼지고 마치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와도 비슷한 고소한 느낌이 코와 입 안에서 맴돌아서 아주 만족스러운 맛이 납니다. 그야말로 금방 구운 빵을 한 입 베어 문 듯한 만족감과도 비슷한 느낌이라 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베스트셀러 싱글 몰트"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위스키라 하겠습니다. 위스키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누가 마셔도 "맛있다."라는 느낌이 들게 되는 술이군요.
여러 이야기가 얽혀있는 역사 있는 술이라는 점도 한몫해서인지 그 맛이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글렌리벳의 12년 이상의 술들도 접해보고 싶군요.
# by | 2009/12/22 20:37 | 재료 잡담 | 트랙백 | 덧글(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