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핫 그로그 (Hot Grog, Hot) by NeoType

요즘 상당히 날씨가 춥습니다. 거기다 요즘은 귀가 시간이 늦어져 거의 막차를 타고 집에 오니 집에 오는 길은 아주 썰렁하기 그지 없어서 체감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는 느낌입니다. 최근은 아침 기상시간이 6~7시라서 이 시간에 돌아오면 가볍게 야식이나 조금 깨작이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잠드는 일이 많습니다만, 그나마 내일은 오전 중에 조금 여유가 있는 편이라 무엇인가 한 잔 마시고 싶어졌습니다.

오늘 만든 것은 오랜만에 소개하는 따뜻한 칵테일입니다.
럼 베이스 칵테일인 그로그(Grog), 이 그로그를 따뜻하게 마시는 핫 그로그(Hot Gro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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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법 - 빌드

골드 or 다크 럼 - 45ml
설탕 - 1~2tsp
따뜻한 물 - 적당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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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핫 그로그는 예전에 소개했던 럼 토디(Rum Toddy)와 거의 같은 칵테일이로군요. 그리고 사실은 칵테일이라기보단 단순히 럼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이나 다름 없는 한 잔입니다. 저 역시 작년 겨울에도 혼자 신나게 만들어 마시던 것이 바로 이 럼 토디였고 슬슬 올해 겨울이 오기 시작하니 점점 이것이 땡기기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그로그(Grog)"... 원래는 약 1650년대에 영국 해군 배에서 생겨난 음료의 이름이라 합니다. 옛날 유럽에서는 장거리 항해를 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 항해 도중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신선한 식수를 보관하는 것이었다 합니다. 배 위에서라면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것이 바닷물이지만 그걸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당시에는 커다란 나무통에 식수를 담아서 항해를 다녔다 하는군요. 그러나 이렇게 통에 담아놓은 물은 항해 중 금방 상하게 되어 마실 수가 없어져 그냥 물을 담는 것이 아닌 적당량의 포도주나 맥주, 브랜디 같은 술을 섞어 보관했다 합니다. 그러던 중 영국이 자마이카를 정복한 이후로는 점차 브랜디나 이러한 술 대신 선원들에게 럼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물을 보관하는 통에 섞는 술도 럼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합니다.

그런데 당시 오랜 항해를 하는 중에 생기는 고질적인 문제는 식수 외에도 바로 괴혈병이 있었다는군요. 하루 종일 짠 바람을 맞으며 비타민C를 만족스레 섭취할 수 없는 선원에게 생길 수밖에 없던 이 괴혈병으로 고생을 하던 차에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 해군의 에드워드 버논 제독(Admiral Edward Vernon)이 배에 싣는 럼을 섞은 물에 레몬이나 라임 주스를 섞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라임 주스... 게임 "대항해시대2"를 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고양이와 더불어(..) 얼마나 고마운 아이템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럼과 라임 주스를 섞은 물을 마신 선원들은 더 이상 괴혈병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고, 선원들은 이렇게 물에 럼과 라임을 탄 음료를 버논 제독의 별명인 "Old Grog"를 따서 "그로그"라 부르기 시작했다 합니다. 버논 제독의 별명의 유래는 항상 그가 그로그럼(grogram, 견과 양모로 짠 직물)으로 만든 망토를 두르고 다녔기 때문에 붙었다고 하는군요.

뭐... 오랜만에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그로그"라는 음료는 본래 형식이 있는 음료가 아닌 적당히 럼에 레몬 또는 라임, 그리고 물을 섞은 음료라는 것이군요. 굳이 레몬이나 라임을 섞을 것 없이 단순히 럼에 물만을 타도 그로그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요즘 일반적인 칵테일 서적에 나온 그로그의 레시피에선 주로 골드 럼이나 다크 럼 같은 풍미 있는 럼을 써주고 클로브(clove, 정향)나 육두구, 계피 등을 넣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레몬이나 라임은 넣어줘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 딱히 정해진 레시피는 없군요.

재료를 준비... 럼은  다크 럼인 바카디 8, 설탕은 일반 가루 설탕이나 시럽을 써도 상관 없습니다만 분위기상 각설탕으로... 마지막으로 펄펄 끓인 물입니다.
잔은 토디 잔을 준비했지만 사실은 평소 쓰는 머그잔 같은 아무 편한 잔이나 써도 무방합니다.

이 그로그는 본래 뱃사람들이 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식이었기도 하고 이러한 물을 더 맛있게 마시기 위해 이런저런 향신료 등을 넣는 일도 있었다고 하니 이 밖에도 넣을 수 있는 재료들은 아무 거나 상관 없군요. 조금이라도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제가 가진 향신료라 부를 수 있는 물건은 위와 같이 육두구와 시나몬 스틱 정도지만 오늘은 시나몬만을 쓰고 신맛보단 럼과 설탕만의 깔끔한 맛을 위해 레몬이나 라임은 넣지 않았습니다.

방식은 간단. 그냥 잔에 설탕을 넣고 럼을 따르고 뜨거운 물을 붓고 휘적휘적 섞어주면 완성입니다.
럼과 물의 비율도 취향에 따라 마음대로이니 아무렇게나 해주셔도 상관 없습니다. 제가 가진 토디 글라스는 약 150ml 정도의 작은 크기이니 굳이 럼을 45ml를 넣을 것 없이 30ml 정도만을 넣는 것이 적당하겠습니다만, 오늘은 모처럼 강하게 해보고 싶어서 45ml를... 그리고 각설탕도 두 개를 넣었습니다.

나머지 부분을 뜨거운 물로 채우고 시나몬 스틱으로 저어 녹이면... 이걸로 핫 그로그 완성입니다.
제가 만든 것은 럼과 물이 거의 1:2 정도로 꽤 진하게 만든 편이군요.

잔에서 슬슬 피어오르는 계피향과 럼의 향이 섞인 김을 즐기고 있다가 한 모금 꿀꺽...
하아~ 두 말이 필요 없는 맛입니다. 뜨거운 물에 섞인 다크 럼의 진한 향과 따스함이 목구멍을 넘어가 뱃속에서부터 전신으로 따뜻함을 쭈~욱 퍼뜨리고, 안 그래도 몸이 조금 추운 상태에서 마셔서인지 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조금씩 홀짝이니 이보다 더한 사치와 안락함은 없는 것 같군요.

핫 그로그... 요즘같은 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칵테일의 하나라 생각합니다. 차가워진 몸이 따뜻한 럼 한 잔으로 확 살아나는 느낌이 드니 추운 겨울철 꼭 시도해볼만한 한 잔이로군요.
단, 그로기(Groggy)라는 말은 바로 이 "Grog"에서 나온 말인만큼 아무리 포근한 한 잔이라도 두 잔 이상부터는 확실하게 취해버릴 위험이 있는 것이니 조심하는 편이 좋겠군요^^

덧글

  • 녕기君~ 2008/11/20 00:05 # 삭제 답글

    피곤에 지쳐 쓰러져도 블로그질은 하셔야 겠다는
    열혈근성 블로거로세 -0-
  • 산지니 2008/11/20 00:07 # 답글

    럼 이군요 시나몬스틱이라~ 계피향이 은근히 나겠군요

    추울떄 따뜻한럼도 좋지요
  • NeoType 2008/11/20 00:25 # 답글

    녕기... 내가 쵸큼 근성.(..)

    산지니 님... 40도짜리 알코올에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의 그 강렬한 향은 참 향기롭지요~
    거기에 시나몬을 푹 담가 향이 듬뿍 우러난 술을 한 모금 마시니... 더 이상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 하심군 2008/11/20 01:19 # 답글

    와우에 나왔던 그로그주가 여기서 유래했었군요..

    보통 오우거들이 많이 마시던데 좀 지저분한 인상일까요 이 주류(...)
  • 배길수 2008/11/20 02:03 #

    로컬 럼으로 만들면 사람이 마시는 거고
    캡틴 큐로 만들면 오크가 마시는 거고
    카라멜 섞은 공업용 알콜로 만들면 오우거가 마시는 거 맞습니다.

    농담이고 사실은 잡맛과 냄새가 뜨거운 물에 싹 날아가서 맛이 깔끔해집니다.
    다소 조악한 술로도 뜨거운 물의 효과를 볼 수 있어서 저비용 고효율이죠.
  • 장어구이정식 2008/11/20 01:24 # 답글

    아앗 달고 뜨끈한 향기로운 술이라니.. 오늘도 무척 추웠는데 한 모금 마시고 싶어요.

    아니 손으로 감싸안고 향이라도 맡고 싶어지는 술이네요.
  • gargoil 2008/11/20 02:28 # 답글

    레시피를 보자마자 '우와 좋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군요. 바에서 이런 레시피 보기 힘들죠.
    해달라면 해주겠지만, 얼마나 정성들여 해줄지도 미지수고.
    저도 럼 좀 몇 병 더 들여놔서 이거랑 핫 버터드 럼 좀 해봐야 겠군요.
  • 테루 2008/11/20 07:07 # 삭제 답글

    오~! 바텐더에서 나온 칵테일이네요

    근데 마시기에는 겁이 좀 나네요..
  • 팡야러브 2008/11/20 13:03 # 삭제 답글

    감기걸렸을때 마셔야 겠네요 ㅎㅎ
    다만... 다크럼을 들여놓기가 조금 ;;;
  • 케야르캐쳐 2008/11/20 15:23 # 답글

    아- 마시고 싶다... 헤벌쭉.
    날이 추워지니 즐겨마시던 진토닉이나 블랙러시안 같은 찬 것들 말고 따뜻한 무언가를 원했는데.. 찾았네요!
  • 대한독립군 2008/11/20 22:39 # 답글

    따뜻한 것도 만들어보고 싶은데...도저히 재료를 들여놓을 여유가 안되네요 OTL
    있는 거라고는 보드카 깔루아 크렘 드 멘트 셋뿐...
  • 하르나크 2008/11/20 23:24 # 삭제 답글

    따뜻한 럼... 맛있죠... 확실하게... 음... 그 은근슬적취하는 알콜의온기를 느끼면...

    추울때마다 생각난다는...(아흘... 마시고싶다 ㄷㄷㄷ...)

    (음... 예전에 친구하나가 스피리터스를 데워먹겠다고 냄비에 살살돌리면서 데우다가

    화재날뻔한게 생각나네요..)

    여기서 교훈... 보드카는 차게 먹어야제맛이다(왜?!?!?)
  • 초보조심! 2008/11/21 20:26 # 삭제 답글

    따뜻하게 한잔하기 좋은칵테일 이군요..
    집에서 창밖을보며 마시는 모습이 그려지내요^^
    네오님은 얼마나 많은 종류를 가지고 계시는지 와인이며..양주 리큐르..
    거기다 쓰이는 여러가지 물품들까지..
    지금 장만한 것만 20가지인데 ...
    보면볼수록 없는게 많은거 같네요..
  • 나른한오후 2008/11/21 20:53 # 답글

    얼마전에 처음으로 칵테일이란걸 마셔보고 반해서 이리저리 찾아보다 오게됬는데 역시 이글루스는 능력자들 천지로군요. 정말 좋은 포스팅이 잔뜩 있네요 링크 걸어가겠습니다^^
  • NeoType 2008/11/22 00:33 # 답글

    하심군 님... 애초에 럼이라는 술이 우락부락한 뱃사람들이 즐길법한 꽤나 호쾌한 이미지가 있지요. 지저분하다기보단 왠지 그러한 우락부락한 오우거들이 마실 법한 이미지가 아닐까 싶군요. 그리고 배길수 님 말씀대로 다소 거친 술도 그나마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장어구이정식 님... 요즘 날씨가 참 후덜덜~하니 찬바람 쌩쌩 부는 날에 움츠리고 걸어다니다보면 머리속으로는 계속 이런 따뜻한 술 생각밖에 안 나는군요. 겨우겨우 따뜻한 집으로 돌아와 이렇게 한 잔 만들어 마시면... 더 이상의 만족은 없지요~

    gargoil 님...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레시피"란 복잡한 기교와 화려한 재료를 잔뜩 섞은 칵테일이 아닌, 이렇게 단순한 재료를 써서 술 본연의 맛을 확실하게 살려주는 것입니다. 이런 류의 칵테일은 당연히 좋은 재료를 써야 그에 걸맞는 훌륭한 맛이 나고 재료에 소홀할 수 없으니 얼마나 성의가 담겼는가를 볼 수 있다 생각하는군요.

    테루 님... 바텐더에서도 제법 인상적으로 나왔었지요. 저도 그 장면을 보고 나서 바로 만들어 마셨었습니다~ 따뜻한만큼 잔에서 풍기는 럼의 달콤한 알코올향이 꽤 강렬하지요. 그래도 물의 양이나 설탕, 부재료 등에 따라선 간단한 비율 변경만으로도 다양한 맛의 변화가 가능하니 꽤 멋진 칵테일이라 생각합니다.

    팡야러브 님... 감기 걸렸을 때는 역시 에그노그가 좋더군요~ 확실히 다크 럼이라는 재료는 그냥 마시기도 제법 맛이 괜찮고 이렇게 따뜻한 것을 만들 때 많이 쓰이지만 생각 외로 일반적인 칵테일에는 자주 쓰이지 않는 편이군요. "다크 럼"하면 당장 생각나는 것이라곤 마이 타이에 소량 띄우는 것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군요;

    케야르캐쳐 님... 확실히 요즘은 얼음을 넣은 진 토닉, 모히토를 비롯, 트로피컬 칵테일류 등은 자주 손이 안 가고 이렇게 따뜻한 것이 최고로군요. 가끔은 또 김이 펄펄 나는 오뎅과 따뜻하게 데운 청주도 땡기니... ...크으... 상상만 해도 침이 고입니다;

    대한독립군 님... 따뜻한 칵테일은 주로 럼, 그 중에서도 골드나 다크를 쓰는 경우가 많고 또는 위스키나 브랜디 등이 많이 쓰이는 편이더군요. 깔루아가 있으시니 따뜻한 커피에 깔루아를 섞고 크림을 소량 띄워주는 깔루아 커피 맛도 꽤 좋지요~

    하르나크 님... 헉... 약 96도의 그 알코올 원액에 가깝다는 보드카를 데우셨다니... 당장 바카디 151만 해도 불 붙으면 잘 안 꺼지는데 큰일은 안 나셨나 모르겠습니다; 역시나 보드카는 냉동실에서 한껏 차갑게 한 것을 역시 차게 식힌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꽤나 각별한 것 같습니다~

    초보조심! 님... 저는 처음엔 진으로 시작해서 간단히 한두 병씩 모으기 시작하던 것이 어느 순간 증식(..)을 일으켜서 본격적으로 종류별로 들여오기 시작, 결국은 술을 보관할 술장과 글라스, 도구까지 점차 늘어나서 이렇게 됐습니다. 무엇인가 하나에 빠진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만 새삼 저 자신을 둘러봐도 잘도 이렇게 모아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른한오후 님... 칵테일이란 술을 적당히 즐기기 좋은 참 멋진 분야라 생각합니다.
    링크 추가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酊KiE옹 2008/11/25 22:04 # 답글

    핫 그로그 좋군요 ㅎㅎ
    핫 버터드 럼도 마시고싶고..
    하지만 바카디8는 슈페리어나 오로보다는 가격이 쪼금 더 쎄서;;
    점점 추워져 오니 한병 사 봐야겠네요 ㅎㅎ
  • NeoType 2008/11/26 13:42 # 답글

    酊KiE옹 님... 사실 칵테일에 주로 쓰이는 것은 바카디 화이트 또는 골드가 대부분이라 저는 이 바카디 8은 주로 그냥 마시거나 이렇게 토디로 많이 마시는 편입니다. 가격이 다른 것들보다 조금 높은 편이지만 그래도 이 맛이 꽤 매력적이라 없으면 허전한 술 중 하나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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