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올드 파 12년 (Grand Old Parr 12 Years Old) by NeoType

안녕하십니까, 네타입니다.
올해 여름은 그야말로 비, 바람, 물, 태풍, 이하반복으로 계속되는 느낌이군요. 대략 6월 중순부터 비가 참 많이 온다고 생각했는데 장마 기간이 따로 없이 8월 초가 되는 지금까지 일주일에 해가 제대로 뜬 날이 며칠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찝찝한 날씨인데 기분까지 착 가라앉는 느낌이라 빨리 태풍이 지나가고 여름도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뭐, 날씨야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오늘은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술 이야기나 해보겠습니다. 저번 주에 발치한 사랑니 상처도 거의 아물었고 실을 뽑게 되었으니 이제 알코올 프리겠지요. 모처럼이니 위스키 하나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스카치 블렌디드 위스키 올드 파(Old Parr), 그 중 12년입니다.

표준품은 알코올 도수 43도에 750ml입니다만 제가 가진 이것은 1리터짜리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올드 파라는 위스키는 그리 국내에서는 대중적으로 알려졌다고 하기엔 어려운 술이라 생각합니다. 아는 분들은 이미 잘 아시고 요즘에는 국내에서도 제법 알려진 술이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갖춰져 있는 가게도 그리 흔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올드 파"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다소 생소한 이름처럼 느끼는 분들도 더러 있었기에 앞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현재로선 국내에서의 입지는 좁은 편이라 생각하는군요.

실제로 이 올드 파는 일본에서 꽤 유명한 위스키인데 현재 이 올드 파 위스키를 소유한 회사는 세계적인 주류기업의 하나인 디아지오(Diageo)로, 디아지오 공식 사이트에서 언급되기로도 올드 파의 점유율이 가장 높은 시장은 일본, 멕시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라고 나와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만화 『바텐더』에서도 2권 말에서 자세히 다뤄졌고 이후에도 은근히 자주 등장하는 위스키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 올드 파는 일단 한 번 맛을 보면 어지간한 블렌디드 스카치에서, 그것도 12년에서 느껴보지 못한 묵직한 질감과 진한 향으로 위스키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매료될 수밖에 없는 위스키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라벨을 자세히 보면 원래의 이름은 Grand Old Parr이지만 흔히 "올드 파"라 부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 올드 파, 올드 파, 하고 불렀는데 이는 본래 실존했던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군요. 본명은 토머스 파(Thomas Parr)라는 영국의 농부로, 무려 152년을 살았다는 영국의 최장수(最長壽) 인물로 기록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1483년 영국 슈루즈버리(Shrewsbury)에서 태어나 1635년 152년 일기로 영국 런던에서 삶을 마쳤다고 하는데 올드 톰 파(Old Tom Parr), 올드 파(Old Parr)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합니다.

토머스 파는 1500년대에 군에 입대했었고 80세가 되어서야 결혼을 했다 합니다. 그러나 이때 1남 1녀를 두었다 하나 이 둘은 어릴 적에 사망했다하며 그의 부인과도 사별한 후, 122세가 되던 해 재혼을 했다 하는군요.

토머스 파의 이러한 장수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여 그는 국가적인 유명인사가 되었고, 1635년 잉글랜드 애런델(Arundel)의 백작인 토머스 하워드(Thomas Howard) 백작은 그를 영국왕 찰스 1세에게 만나게 하기 위해 런던으로 데려갔다고 하는군요. 이때 찰스 1세는 파 노인의 장수 비결을 물었고 그는 "저는 100세가 되던 해 속죄(penance)를 하였습니다."라 답했다 합니다.

실제로 파 노인은 생전 상당히 건강하고 정정했었다 하며 이는 그가 살던 시골의 좋은 공기와 평소 채식에 가까운 식습관과 소식가라는 점에서 기인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런던으로 옮겨온 파 노인은 1635년 그해 11월에 사망하게 되었는데 이는 음식과 환경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하는군요. 아무래도 도심지였던 런던의 공기는 그의 고향에 비하면 좋지 않았을 것이고 식사 역시 왕과 귀족들이 환대를 했었다고 해도 평소 그의 식습관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 후 파 노인은 찰스 1세의 명에 따라 왕과 귀족, 명사들이 안장된 웨스트민스터 성당(Westminster Abbey)에 안장되었고 그의 묘비는 지금도 남아있다 합니다. 생전 그의 모습은 많은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렸다 하며 위 사진에 나와있는 파 노인의 초상화는 당시 궁정화가였던 루벤스(Sir Peter Paul Rubens)의 그림이라 하는군요.

스카치 위스키 올드 파는 바로 이 파 노인의 애칭을 따 지은 이름이며 그 이름에서 연상되듯 매우 중후한 맛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위스키는 최초 1871년 스코틀랜드 북동부 스페이 강(River Spey)에 위치한 크레이건모어(Cragganmore) 증류소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제작자는 제임스 그린리스(James Greenlees), 사무엘(Samuel) 그린리스 형제로, 그들의 위스키 역시 파 노인처럼 "오래도록 지속되는 완숙함"의 상징으로 지속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지었다 하는군요.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Speyside)의 크레이건모어 증류소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추측 가능하듯, 그린리스 형제는 이 싱글 몰트 크레이건모어를 키 몰트(key malt)로 하여 40여종 이상의 위스키를 블렌드하여 위스키 올드 파를 만들어냈습니다. 덕분에 올드 파 위스키는 몰트의 비율이 상당히 높기로 유명한데, 그 덕분에 웬만한 12년 위스키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상당한 풍부함과 다양한 맛을 갖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위스키는 판매가 시작되고 영국 런던에서 크게 성공을 했고 해외로도 수출되기 시작했다 하며, 영국 위스키 평론가이자 작가인 짐 머레이(Jim Murray)는 그의 저서 『Jim Murray's Whisky Bible』에서 이 올드 파를 최고의 위스키 중 하나로 평했습니다.

올드 파 위스키 병이 있다면 이걸 한 번 해봐야지요.
이 독특한 병의 형태 덕분에 이런 아슬아슬한 균형잡기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넘어질 듯 불안하게 서있는 모습을 만화 『바텐더』 2권에서는 "궁지에 몰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끝까지 버틴다."라는 점을 들어 정치가에 빗대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 디카로 직접 촬영 >

척 봐선 그냥 병을 기울여 세우면 될 것 같지만 세워지는 면이 살짝 곡면이라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특히 제 것은 1리터 짜리라 병이 더 커서 쉽게 세워지지 않더군요. 세워보면 은근히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어딘가에선 이렇게 서있는 모습이 마치 남성의 "힘"(?)을 상징한다고 하는 곳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그냥 넘어가지요;

잔에 한 잔 따랐습니다.
이렇게 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차게 향이 퍼져가는군요. 입에 살짝 흘려넣으면 마치 향신료와도 같은 짜릿함이 혀를 감싸고 이어서 진한 스모키함이 밀려오는군요. 스파이시한 짜릿함은 있지만 위스키의 질감 자체가 묵직한 면이 있어서 어딘가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안정감도 느껴집니다. 향기로운 달콤함과 짜릿하지만 촉감은 묵직하고 부드러워 마셔도 입에서 코 안쪽까지 향이 계속 맴돌아 아주 만족스러운 풍미를 줍니다. 곡물의 풍미 뿐 아니라 어딘가 산뜻한 과일향 같은 깔끔함도 느껴지는군요.

이렇게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좋지만 온더락으로 마시거나 물을 조금 떨어뜨려도 상당히 맛이 좋습니다. 특히 물을 조금 넣으면 이 묵직함이 살짝 사라져 달콤함과 산뜻함이 한층 강조되어 꽤 맛이 좋아집니다.

이 올드 파는 그냥 마셔도 좋지만 칵테일로 만든다면 특히 이런 드럼뷔(Drambuie)나 아마레또로 만드는 러스티 네일(Rusty Nail), 갓 파더(God Father) 같은 고풍스러운 칵테일이 잘 어울리지요.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니 병들의 형태도 은근히 비슷한 분위기라 묘하게 잘 어울려 보이는군요.

러스티 네일을 한 잔.
묵직한 위스키와 묵직한 리큐르의 만남이라 해야겠군요. 이 둘을 섞어놓으면 마치 "이 칵테일의 본연의 맛은 이것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잘 어울립니다. 서로가 가진 맛과 향, 위스키의 스파이시함과 스모키함이 리큐르의 진한 꿀과 같은 허브 풍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이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다른 술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군요. 나이트캡 칵테일 대용으로 이것 한 잔을 마시고 잠이 들어도 기분 좋을 것 같은 한 잔입니다.

저는 이 1리터를 약 4만 8천원 정도에 구했습니다. 사실 이 올드 파는 일반적인 12년에 비해 가격대가 살짝 높은 편입니다.

장수한 노인의 이름을 딴 위스키, 그리고 그 이름처럼 오래도록 여운을 주는 훌륭한 위스키이니만큼 꼭 한 잔 마셔볼만한 가치가 있는 술이라 생각합니다.

덧글

  • SY Kim 2011/08/08 12:04 # 답글

    올드 파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위스키중에 하나입니다.

    블렌디드 치고 이렇게 부드럽고 싱글몰트에 가깝게 향을 내주는 녀석은 참 드물죠.
  • NeoType 2011/08/08 12:36 #

    SY Kim 님... 처음 이 위스키를 마셔봤을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생각 외로 상당히 괜찮은 맛이라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지요.^^ 어지간한 12년 위스키들을 초라하게 할 정도라는 느낌도 듭니다.
  • 칼군 2011/08/08 12:07 # 답글

    처음 보고 정말 서나요?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세운 사진이 있네요.
  • NeoType 2011/08/08 12:37 #

    칼군 님... 정말 서지요.^^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저렇게 서는 걸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지 아니면 만들고 보니 절묘하게 서게 되어 이야기가 붙은 건지 참 신기합니다.
  • 김어흥 2011/08/08 16:30 # 답글

    러스티 네일 참 좋아요! ㅋㅋ 가게에서 툭 하면 만들어 마시는 칵테일입니다!!
  • NeoType 2011/08/08 23:22 #

    김어흥 님... 가게에서 술 마실 때도 가끔 주문하는데 어지간해선 실망하지 않을 칵테일이라 좋아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드럼뷔를 섞는데 6년 위스키에 섞는 곳만은 "제발 좀..." 소리가 나옵니다;
  • 국사무쌍 2011/08/08 17:22 # 답글

    저 병을 노리고 저렇게 만든건지 만들고 보니 저런건지가 궁금해지네요
  • NeoType 2011/08/08 23:23 #

    국사무쌍 님... 저 병의 형태에 대해선 제작자 밖에 모르겠지요.^^;
    아직까진 어떠한 책이나 글에서도 본래 어떤 의도로 저런 형태의 병을 만들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우엉남 2011/08/08 20:55 # 삭제 답글

    아.. 올드파가 디아지오제품이었군요; 몰랐어요.

    크래건모어가 키몰트니 맞겠네요. 마셔본지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알콜프리십니까? 축하드려요.
  • NeoType 2011/08/08 23:25 #

    우엉남 님... 디아지오에서 소유하고 있지만 디아지오 코리아에선 국내에 취급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러고보니 크레이건모어도 디아지오 소속이었던가요. 요즘 이 녀석도 가끔 보이던데 언제 한 번 들여와봐야겠습니다.^^
  • KMC 2011/08/08 22:00 # 삭제 답글


    올드파 맛있는 술이지요. 그나저나 저 병볼때마다 사진처럼 비스듬하게 세우고 싶은 욕구가 팍팍 생기네요. ㅋㅋㅋ
  • NeoType 2011/08/08 23:26 #

    KMC 님... 평소에 술장에 저렇게 세워뒀다가는 살짝만 삐끗해도 주변 술들까지 와장창~이겠지요;;
  • 술마에 2011/08/08 22:50 # 답글

    정말 괜찮은 위스키인 거 같습니다. 저도 저 향을 정말 좋아하지요.
  • NeoType 2011/08/08 23:27 #

    술마에 님... 12년 블렌디드 중 이 정도의 스모키한 피트향과 맛이 진한 물건도 드물지요.^^
  • 성하 2011/08/09 00:23 # 삭제 답글

    횽아~ 남성의 힘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줘봐 이해가 잘 안되 ㅠㅠ
  • NeoType 2011/08/09 00:42 #

    성하... 오랜만이구만.
    ...이해가 안 되긴 뭔...; 굳이 여기다 쓸 필요 있남; 그냥 네○버 가서 "카나마라 축제" 치면 관련(?)된 내용 있수;
  • 샷찡 2011/08/09 09:10 # 답글

    전 싱글몰트는 많이 먹어본 적은 없지만, 발렌타인이나 죠니워커같은 스카치 류 보다는

    향이 진하고 묵직한 맛에 버번을 더 자주 즐기는데요, 한번 마셔보고싶네요.
  • NeoType 2011/08/09 21:19 #

    샷찡 님... 버번은 버번만의 매력이 참 많지요.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엔 버번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아 참 아쉽더군요. 짐빔, 와일드 터키, 메이커스 마크가 그나마 흔한 것들이니...
  • SJ 2011/08/10 06:05 # 삭제 답글

    올드파는 옛날에 많이 보였던 위스키였는데 어느때부턴가 잘 안 보였죠. 얼마전에 Ardbeg을 한번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죽기 전에 Islay에 꼭 가서 위스키 증류소 투어 지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더군요... Caol Ila, Ardbeg, Laphroig...
  • NeoType 2011/08/10 23:14 #

    SJ 님... 최근 올드 파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아드벡을 드셔보셨습니까. 정말 괜히 아일레이, 아일레이 하고 아일레이 위스키를 찾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단 국내에선 아드벡, 라프로익, 보모어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는데 Caol Ila(...이건 읽는법이 참...^^;)는 한 번도 못 봐서 언젠가 꼭 구해보고 싶더군요.
  • azimazim 2011/08/12 16:08 # 삭제 답글

    개인적으로 위스키라는 것이 취향이 갈리는 건지, 아니면 제가 유독 못 마시는건지 참 궁금한 놈입니다. 전에 공항 면세점에서 잭다니엘 1L 짜리 샀다가 한잔 먹고 쓰디쓴 참회의 고통을 느낀 다음에 잭콕으로라도 먹어보자 해서 만들었다가 역시 싱크대로 주르르륵. 그리고 그 잭다니엘은 타인에게 그냥 선물했다는 가슴아픈 비화가 있거든요. ☞☜

    뭔가 이 타오르고도 씁쓸한 듯 미묘한 맛을 즐기지 못하는 것인가...
  • NeoType 2011/08/12 16:39 #

    azimazim 님... 잭 다니엘 정도면 위스키 중에서도 아주 맛이 순하면서도 달콤하니 마시기 좋은 녀석인데 그렇게나 쓰게 느끼셨다니... 나중에 다시 드셔보셨다면 다르게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선물로 주셨다니 어쩐지 안타깝군요;

    저 자신도 위스키를 처음 마셔본다는 사람에게 1순위로 권하는 위스키가 잭 다니엘인데 나중에 다시금 드셔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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