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RED] 마스 라 플라나 (Mas La Plana) 2007 by NeoType

안녕하십니까, 네타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조금 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는 점점 쌀쌀해지기 시작했고 조만간 영하권으로 떨어진다고도 하니 곧 겨울이라는 실감이 드는군요.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입장에선 날씨가 서늘하면 좋지만 추워지면 꽤 힘들겠군요. 그래도 얼마 전 겨울용 자전거복에 마스크, 장갑 등 완전무장 장구들을 구해뒀기에 한편으론 이것들을 빨리 써보고 싶기도 합니다.(..)

오늘 이야기할 와인은 평소에 쉽게쉽게 따는 1~2만원대의 데일리 와인이 아닌 약간의 호사를 부린 물건이군요. 스페인의 대표적인 프리미엄 와인의 하나인 마스 라 플라나(Mas La Plana), 그 중 2007년입니다.

프리미엄 와인... 사실 이러한 명칭은 따로 정의된 바는 없지만 흔히 어떠한 와인 상표의 고급 와인들을 가리켜 프리미엄 와인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명칭을 붙일 수 와인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유명하고 훌륭한 맛을 가진 고가의 와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물론 저렴하면서도 맛이 훌륭한 와인도 많고 유명하지 않더라도 다른 와인들에 지지 않을 출중한 포텐셜을 가진 와인도 많겠지만 이런 프리미엄 와인의 공통점이라면 그 이름에 걸맞는 품질과 만족감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사실 비싼 와인이라면 당연히 맛있겠지, 라고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상이고 실제로 이런 와인을 앞에 두고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와인을 열어 잔에 따라 마시면 그 기대감과 "비싼 와인을 마신다."라는 인식이 작용해 실제로 맛을 어떻게 느꼈건간에 높은 평가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특히 그 고가의 와인을 자기 돈을 주고 산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그러나 저는 이제까지 마셔본 위스키나 기타 진, 보드카 등의 증류주들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평소에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저가, 중저가의 술들을 마셔보고 점점 고가의 술을 마셔보면 이것이 어째서 "고급"인지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싸구려를 알아야 좋은 물건을 알게 된다."라는게 제 지론이기에 와인에서도 평소엔 그냥 1~2만원 내외의 중저가 와인들을 주로 마시더라도 가끔은 4~5만원대 또는 그 이상의 와인을 마셔보면 이러한 와인들은 어째서 이렇게 고가인지, 그리고 왜 고급으로 취급되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마셔본 이 토레스(Torres) 마스 라 플라나라는 와인은 프리미엄 와인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품질과 만족감을 갖춘 와인이라는 점을 깊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TORRES"는 1870년대 최초 스페인 동부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근처의 페네데스(Penedes)라는 대표적인 스페인 와인 생산 지역에 와이너리를 설립한 초대 토레스인 하이메 토레스(Jaime Torres)의 이름을 딴 것이며, 이 토레스 와이너리는 오늘날에도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토레스 가에 의해 경영되는 와이너리입니다. 토레스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웬만한 와인 매장의 스페인 와인 코너에 가보시면 이 "TORRES" 상표가 붙은 와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 토착 품종인 템프라니요(Tempranillo)를 이용한 코로나스(Coronas), 까베르네 또는 메를로 품종을 이용한 아트리움(Atrium) 시리즈, 가르나차(Garnacha)와 까리네냐(Carinena) 품종을 쓴 그랑 상그레 데 토로(Gran Sangre De Toro) 등 2~3만원대 내외의 와인에서부터 로제와 화이트 와인들까지 전부 만족할만한 품질을 보여주는 와인들이 많습니다.

"마스 라 플라나"라는 이 이름은 이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의 이름이자 스페인어로 "초원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하는군요. 이 마스 라 플라나는 페네데스 지역에 있는 매우 작은 밭에서 생산되는 까베르네 소비뇽 100%로 만들어지는 와인으로 최소 4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와인이지요. 또한 과거 1979년 프랑스에서 열렸던 세계의 유명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에서 샤또 라뚜르(Chateau Latour) 등 쟁쟁한 와인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던 걸로도 유명한 와인입니다. 이 때 우승한 와인이 바로 이 마스 라 플라나 1970년 빈티지였다고 하는군요.

제가 이 마스 라 플라나에 흥미가 생겨 구입하게 된 이유는 이보다 좀 더 오래 전 바로 이 와인을 구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토레스 그랑 코로나스 마스 라 플라나(Gran Coronas Mas La Plana)...라는 긴 이름이 붙어 있는 건 접어두더라도 이 와인의 빈티지가 무려 1989년도라는 점이 인상적이더군요.

1989년이라면 제가 우리나라 나이로 다섯 살 때로군요. 그런 꼬맹이던 시절의 와인이 이렇게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습니다.(..)

1989년이라는 빈티지치고는 라벨이 꽤 깨끗한데 라벨 뒷면의 설명에 따르면 2004년에 코르크를 교체하고 라벨을 새로 붙였다고 되어있더군요. "그랑 코로나스"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요즘에도 3만원 내외로 구할 수 있는 "그랑 코로나스"라는 토레스의 와인이 있지만 이 와인은 순수하게 마스 라 플라나 포도원에서 생산된 까베르네 소비뇽 100%로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번에 마신 마스 라 플라나의 1989년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마스 라 플라나 2007년을 마셔본 것은 이렇게 오래된 와인을 접한 것은 처음이기도 했고 이왕이면 좀 더 젊은 와인을 마셔본 다음에 이걸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군요. 이 와인을 따는 것은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최소 22년 이상은 버텨온 와인이니 좀 더 보관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었지만 이 마스 라 플라나의 2007년도 상당히 훌륭한 맛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르크를 뽑아내는 그 순간부터 강렬한 향이 퍼져나오는데 마치 송이 버섯이나 송로 버섯이 연상되는 흙내음 풍기는 진한 나무향입니다. 따자마자 잔에 조금 따라 코를 가져가면 물씬 풍기는 이 진한 향은 어지간한 와인에선 느껴보기 힘든 버섯과도 비슷한 스파이시함이 마치 깊은 숲속에서 한껏 숨을 들이쉬었을 때의 느낌과도 비슷하군요. 그늘지고 축축한 습지, 햇빛은 쨍쨍하게 들지만 무성한 나무에 가려 어두울 정도로 그늘이 진 숲속이 떠오를 정도의 짙은 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입에 한 모금 머금은 그 순간 입 안이 가득 차는 진한 풀바디감에 묵직하게 혀에 감겨드는 첫 인상이 매우 기분 좋은데 입 안과 혀를 전혀 자극하지 않고 무겁게 퍼져가는 이 맛은 상당한 포텐셜을 가진 와인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진하게 농축된 수프와도 비슷한 질감인데 약 30여분 정도가 지나자 무겁고 강렬했던 첫 인상에 부드러움이 더해지기 시작해 상당히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었고, 이러한 맛이라면 이만한 돈을 들인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의 만족감이 들었습니다.

이 마스 라 플라나의 수입사 책정 소비자 가격은 88000원이지만 역시 구입처에 따라 가격이 다르겠습니다.
고가의 와인은 어째서 고가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 와인이었군요. 2007년을 마셔보고 상당히 만족스러웠으니 나중에 마시게 될 1989년은 어떤 맛일지 기대가 큽니다.

덧글

  • SJ 2011/11/21 15:43 # 삭제 답글

    수입사 책정 소비자 가격이 88,000원이면 원산지 가격은 약 4만원 언저리가 아닌가 싶네요... 여기 기준으로도 "고가" 와인에 들어가는 와인이죠. 와인을 마시다 보면 5유로짜리, 10유로짜리, 20유로짜리, 30유로짜리 와인은 왜 그 가격이 붙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여기서는 10유로짜리 와인이면 누구네 집에 초대받을 때 선물로 가져가도 체면이 선다는 게 일반적인 문화인 것 같습니다... (한국 기준으로는 2 - 3만원 짜리 정도 되겠네요...)
  • NeoType 2011/11/23 00:18 #

    SJ 님... 저 가격이면 제가 일하는 곳이면 7만원대에 팔고 있지만 백화점 들어가면 8만원 후반, 만약 호텔이나 기타 다른 소매점에선 10만원에 육박할 가격이지요.

    가끔 다른 사람들과 와인 한 병씩 가지고 가서 마시는 자리가 있는데 그런 곳이라면 대략 3~4만원 정도는 가져가야 어느 정도 체면(?)이 서는 편이니 사람들의 인식은 비슷비슷한 것 같군요.^^
  • 역설 2011/11/23 02:30 # 답글

    1989년이라니 숫자가 사람을 오묘하게 끌어당기는 맛...
  • NeoType 2011/11/24 00:58 #

    역설... 오래된 물건이고 쉽게 구할 수 없는게 바로 앞에 있으면 칵~ 지르게 되더만.
    이른바 순간 지름의 법칙.(..)
  • SY Kim 2011/11/25 16:03 # 답글

    싸구려를 알아야 좋은 물건을 안다.

    명언이군요. ^^
  • NeoType 2011/11/25 18:48 #

    SY Kim 님... 그래서 요즘은 와인도 5천원 내외의 저가에서 10만원 이상의 것들도 돌아다니며 맘에 드는대로 사모으다보니 재정이 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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