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펙사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 시음회 다녀왔습니다. by NeoType

안녕하십니까, 네타입니다.
오늘...이라고 하기엔 이미 날짜가 지나버렸군요. 어쨌든 11월 28일 월요일에 열렸던 와인 시음회에 다녀왔습니다.

프랑스 농식품 진흥공사, 즉 소펙사(SOPEXA)에서 주관하는 와인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보르도의 그랑 크뤼급 와인 시음회로 서울역 근방에 위치한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예전엔 그냥 이런 것이 있구나~ 싶은 생각만 하던 행사였고 무엇보다 여기에 참가할 수 있는 조건이 와인 회사 직원이나 호텔, 레스토랑, 와인 바 등 와인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는 행사였기에 그저 먼 세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저도 나름대로 와인 회사 소속으로 와인 관련 일을 하는 입장이 되어 당당히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보르도 그랑 크뤼 및 그랑 크뤼급 와인들... 하나하나 이름만 들어도 매우 탐나는 와인들인데 이것들을 한 번에 시음할 수 있는 기회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참가하고 싶어지는 자리지요.

이번 행사의 와인 리스트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보르도 그랑 크뤼의 1급에서 5급의 와인들 중 1급인 다섯 가지는 당연하겠지만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2급에서 5급까지의 굵직굵직한 와인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흔히 접하기 힘든 뽀므롤 및 생떼밀리옹의 그랑 크뤼들, 그리고 소떼른 지역의 귀부와인 등이 제공되어 매우 기대되는 자리였습니다. 무엇보다 와인 하나하나의 가격대가 그나마 저렴한 것은 5~8만원대이지만 비싼 것은 40만원대 또는 그 이상으로 오르기도 하는 와인들이었기에 평소 선뜻 구입하기조차 힘든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었군요.

오늘 참가했던 이 시음 행사...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오늘 또 하나의 천국을 보고 왔습니다. 올해 초에 열렸던 위스키 라이브 2011에서 큰 감동을 받고 돌아왔었고 오늘도 그에 못지 않은 귀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오늘 행사는 완전 무료였다는 점이 더할나위 없었습니다.(..)

이하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찍었던 사진들을 줄줄이 늘어놓습니다. 상당히 길어져 가려둡니다.

이하 내용.

행사장 입구에 놓여 있는 리델 글라스들...
역시 그랑 크뤼 와인들답게 제공하는 잔부터 최상급 상표의 하나인 리델을 제공했습니다. 행사장 내내 하나를 들고 다니며 잘 사용했는데 행사 끝나고 그대로 들고 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뜸 쌩얼 인증.(..)
참가 와이너리 내용이 잘 정리된 소책자 한 권과 테이스팅 노트 기록용 책자 두 개를 받았는데 테이스팅 노트 기록용 책은 처음엔 마셔본 것들을 조금씩 끄적였지만 한 손엔 유리잔, 다른 손엔 카메라, 어깨엔 가방으로 온몸이 한 가득이었기에 기록하는 건 포기하고 마셔본 것들을 최대한 머리속에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전반적인 회장 풍경들.
각각의 와인들이 지역별로 배치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큰 물통들과 물 버릴 통이 비치되어 있어 한 가지를 시음하고 잔을 씻거나 뱉어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제공되는 와인들은 전부 2008년 빈티지로 보르도의 2007년은 그리 썩 좋지 않은 시기였지만 2008년은 꽤 좋은 시기였다는군요. 또한 2009년은 보르도의 그레이트 빈티지였던 2005년 이후 찾아온 매우 좋은 해였다고 하니 2009년 그랑 크뤼라면 나오자마자 사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마셔본 2008년은 대부분 장기숙성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그랑 크뤼급 와인들에 있어선 매우 Young한 수준을 넘어 거의 햇와인을 바로 따서 마시는 셈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행사가 시작되어 부스에서 막 마개를 개봉한 직후 돌아다니며 시음을 했을 때는 아무리 이름 있는 고가 와인들이라도 전반적으로 향도 빈약했고 어딘가 텁텁한 느낌이 들거나 맛도 영 만족스럽지 못한 와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르고 행사가 시작된 지 2시간 정도가 지날 무렵부터는 어떤 와인을 시음하든 상당한 수준급의 맛과 향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처음 마셔봤던 와인들도 다시 한 번 시음하니 완전히 인상이 바뀐 것들이 많았고 과연 아무리 젊은 와인이라고 해도 그랑 크뤼는 그랑 크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사 초반에는 주로 이름 있는 와인들이나 평소 관심이 있었던 와인들 중심으로 찾아다니며 시음을 했습니다. 제가 특히 관심 있었던 와인은 생떼밀리옹의 샤또 앙겔루스(Angelus)와 빠쁘 끌레망(Pape Clemant), 뽀므롤의 라 꽁세이앙뜨(La Conseillante), 생떼스테프의 라퐁 로셰(Lafon-Rochet), 생줄리앙의 생피에르(Saint-Pierre), 마고의 로장 가씨(Rauzan-Gassies)와 로장 세글라(Rauzan-Segla) 등이었는데,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시음을 하며 생각 외로 정말 좋은 와인들을 알게 되기도 했고 기대했었지만 다소 기대에 못 미쳤던 와인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기대가 컸었던 로장 가씨와 로장 세글라... 둘 다 보르도 그랑 크뤼 2급에 속해 있고 자주 볼 수도 없었기에 기대가 컸었는데 상당히 만족스러운 맛이었습니다. 특히 로장 세글라 쪽이 밸런스도 탄탄하고 부드러운 탄닌감에 풍부한 과실맛이 느껴져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대가 컸었지만 은근히 만족스럽지는 못했던 라그랑주(Lagrange)였습니다. 행사 초반에 한 잔 마셨을 땐 아직 맛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행사 후반쯤에 다시 한 번 시음했을 때도 생각만큼 강렬히 와 닿는 느낌이 적고 특징적인 인상이 없었기에 다소 아쉬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다고도 볼 수 있는 샤또 딸보(Talbot)...
현재 집에 바로 이 2008년을 한 병 가지고 있지만 오늘 여기서 시음을 해보고 이걸 따는 건 몇 년 후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딸보 부스 앞에서 느낀 점이지만 다른 부스들만큼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진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워낙 유명한 만큼 마셔본 사람들도 많으니 굳이 시음하려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군요.

처음 본 와인이었지만 상당히 맛이 마음에 들었던 샤또 라리베 오 브리옹(Larrivet Haut Brion).
그라브의 페삭 레오냥 지역 와인들은 생소한 것들이 많았기에 이 와인뿐 아니라 여러 가지를 시음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군요. 레드와 화이트 두 가지 모두 시음했고 화이트 와인의 매우 싱싱하고 상큼한 느낌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페삭 레오냥의 오 베르제(Haut-Bergey)와 라 루비에르(La Louvier).
두 가지를 나란히 시음해서 맛이 세트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라 루비에르는 꽤 부드럽고 스파이시하지만 향기로운 느낌, 오 베르제 쪽은 좀 더 탄닌감과 강렬한 인상의 맛이었습니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끼르완(Kirwan)과 까망삭(Camensac), 그리고 사진엔 없는 꼬스 라보리(Cos-Labory).
끼르완은 3급, 까망삭과 꼬스 라보리는 5급이지만 평소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이라 매일 보면서 이거 맛있을까, 싶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맛이 좋았기에 놀랐습니다. 그랑 크뤼 5급이라고 해서 절대 무시 못 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된 느낌이었습니다.

2급인 브란 캉트냑(Brane-Cantenac)과 3급인 캉트냑 브라운(Cantenac Brown).
이름이 비슷해도 등급 하나가 차이가 나지만 둘 다 맛이 좋았습니다. 특히 브란 캉트냑은 최근 물건이 많이 진열되어 흔해보일 정도였는데 일단 마셔보니 상당히 부드러운 탄닌감에 매끄러운 느낌이라 상당히 만족스러운 맛이었습니다.

하나하나 이야기를 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와인들이 많았습니다만 일일이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길어지니 이쯤 줄입니다. 마시는데 정신이 팔려 미처 찍지 못한 와인들이 많았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 준비된 와인이 전부 떨어져 마셔보지 못한 것들도 몇 가지 있었지만 온종일 코와 입이 호강한 날이었습니다. 마셔본 와인들의 맛과 향을 전부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어떤 와인을 마셔봤다는 이름은 확실하게 기억에 새겨 앞으로 마음에 드는 것들은 한 병씩 직접 구입해서 제 페이스대로 천천히 즐겨보고 싶군요.

오늘의 전리품들.(..)
마셔본 와인들의 코르크는 죄다 챙겨왔습니다. 인기(?)가 좋아 많은 분들이 가져가 미처 챙기지 못한 코르크들도 있지만 꽤 많이 챙겨왔군요. 이것들은 종류와 지역별로 정리해 잘 보관해둬야겠습니다.

요즘은 마시는 와인들의 코르크를 전부 모아두는 편인데 이런 코르크들을 잔뜩 모아두면 여기에서 퍼지는 향도 상당합니다. 큼지막한 유리병에 담아두면 보기에도 나쁘지 않고 이제까지 마셔본 것들을 다시금 떠올릴 수도 있으니 이렇게 모으는 것도 꽤 재미있더군요.

덧글

  • Kian 2011/11/29 04:59 # 삭제 답글

    으잌!!!!!!! 급 깜놀했습니다. 오늘은 앱솔루트보드카 구경하다가 아주 간만에 네타님 공간에 도달했는데(왜 항상 블로그를 보다보면 네타님 공간에 오게되는지는 미지수지만 어쩐지 맛깔스러운 설명을 탐독하다다시보면 꼭 여기.ㄷㄷ)오늘 쓰신 글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ㄷㄷ 사실 와인에 대해서 잘 몰라서 반은 이게뭐지 하면서 보긴 봤는데 어쨌든 맛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ㄷㄷㄷ 오늘이었을줄이야.ㅠㅠㅠ 왜 나는 몰랐는데도 아쉽지. ㄷㄷ 여튼 수고많으셨습니당.
  • NeoType 2011/11/29 13:29 #

    Kian 님... 자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인 시음회다보니 아주 입 안이 시퍼래지도록(..) 이것저것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평소 선뜻 하나 구입하기도 힘든 가격대의 와인들을 줄줄이 시음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군요.^^
  • 우엉남 2011/11/30 03:40 # 삭제 답글

    몰트바에 근무하다 보니 몰트공부하기도 바쁘지만 와인도 꽤 있는 편이라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갈피조차 못 잡겠네요..
  • NeoType 2011/11/30 16:03 #

    우엉남 님... 와인 공부야말로 특정한 목표가 없다면 정말 막막하기 그지 없지요. 일단은 프랑스니 이탈리아니 칠레나 호주니 하는 대표적인 생산지를 중심으로 관심 있는 종류의 와인부터 알아가면 방향이 잡혀갑니다. 가볍게는 1만원대의 데일리 와인부터 점차 관련 상표의 고급을 알아가기 시작하면 대략적인 지역 특색이나 포도종에 대해 이해가 되지요.^^

    ...그래도 솔직히 위스키쪽에 비하면 금전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쉽게 배우긴 어렵습니다;
  • Kian 2011/11/30 05:24 # 삭제 답글

    사실 네타님 덕분에 요것조것 눈팅한 것도 있고 해서 많이 쌓였는데 여전히 와인은 넘사벽이 좀 있는 것 같더라구요. 다른 술들에 비해서 거의 바다(...)수준이랄까요. 다른 술들이 그냥 호수나 만(灣)이라고 한다면 이건 왠지 태평양같은 느낌... 감이 잘 안잡혀요. 제가 와인에 대해서 알고있는 건 지명인 보르도와 부르고뉴(병 생김이 다르다는것?;) 샴페인이 아니고 스파클링와인이라고 불러야된다는거 정도요?;; ... 왠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군요.ㅠㅠ 차라리 왠지 국산 증류주인 소주에 대해서 탐독하는 게 쉬울 정도로(오히려 이것도 어려운거 같기는 합니다만.) 빨려들면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요. 이건 쌩뚱맞은 뱀발이지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전통소주는 드셔보셨나요?
  • NeoType 2011/11/30 16:08 #

    Kian 님... 저도 예전엔 무작적 일단 책들부터 읽어가며 주요 지역이니 특색이니 하는 것들을 외우기만했지 정작 많은 와인은 마셔보지 못 했었습니다. 이제야 와인 업계에서 일을 하며 본격적으로 빠져들어 여러 와인들을 많이많이 사들이고 여러 가지를 마셔보는 등 자금과 시간 투자를 하니 점점 친숙해져 가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말씀하신대로 칵테일이나 증류주들은 배운다면 금방 흥미를 갖고 익혀갈 수 있지만 와인은 한 번 제대로 덤벼들면 오히려 알아간다기보단 더욱 모르게되는 느낌입니다. 그렇기에 또 하나하나 새로운 걸 마셔가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 또 와인인 것 같군요.

    전통 소주라... 평소 제가 자주 마시는 증류식 소주라면 역시 화요와 안동 소주 두 가지로군요. 화요라면 41도 짜리를 집에 두고 생각 나면 홀짝이지만 안동 소주는 주로 이걸 취급하는 고기집에서 먹을 때 주로 주문합니다. 조금 가볍게 마시고 싶은 날은 20도, 가끔 기분이 나면 41도 짜리로 주문해서 마시는데 두 명이 350ml짜리 한 병만 마셔도 맛도 좋고 아주 기분도 좋아 자주 즐기고 있습니다.^^
  • Kian 2011/11/30 18:34 # 삭제 답글

    으익! 화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와인을 처음 마셨을 때는 그냥 무작정 이게 술이구나(...)하고 마셨었는데 신맛이 굉장히 강하다고 느낀 거 외에는 어떤 맛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죠(...) 제가 다른 걸로는 홍차를 좋아하는데 왠지 비슷한 점은 홍차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일단 틴을 열면 자주자주 마셔서 마셔없애야하고, 소포장으로 공유는 할 수 있지만 다양한 건 직접 다 마셔봐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같은 차라도 어떻게 우리고 누가 우리고 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도 맛이 많이 다른 것 같더라구요. 기문인데 전혀 그 맛을 알수 없던(...) 곳도 있었어요. 요새는 모르지만 아직도 제대로 홍차를 마실 만한 곳은 많지 않아서 좀 슬퍼지는... 그래도 와인은 잘 찾아보면 다양하게 접할 방법이 있는데 말이죠.
  • NeoType 2011/12/01 13:41 #

    Kian 님... 홍차라... 꽤 섬세한 방면에 관심이 있으시군요.^^
    차 종류도 제대로 접해보고 싶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마실 수 있는 장소도 별로 없고 아무래도 저 자신은 커피파라서인지 제대로 된 홍차를 마셔본 적도 없어 아쉽습니다. 이쪽도 파고들면 정말 방대한 세계일텐데 역시 여기까진 어려울 것 같습니다.^^;
  • SJ 2011/12/02 02:08 # 삭제 답글

    아... 천국입니다...ㅋㅋ
  • NeoType 2011/12/02 12:58 #

    SJ 님... 눈 앞에 수많은 술이 있는 것 만으로도 천국이지요.^^;
    단, 마실 수 없다면 그 순간 지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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