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RED] 돈나푸가타 세다라 (Donnafugata Sedara) 2009 by NeoType

안녕하십니까, 네타입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은 특히 가격대가 조금 있는 와인들을 구입하고 마셔보는데 재미들렸습니다. 한달 월급을 받으면 일부는 저축한다지만 나머지는 교통비나 기타 잡비로 쓰고 있는데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제 입장에선 교통비는 거의 들지 않기에 은근히 이쪽 방향으로 쓸 수 있는 자금이 약간이나마 있는 편입니다. 적당히 아끼면서 쓰고 있다 생각하지만 전에는 주로 1~2만원 내외의 와인들을 줄줄이 구입해서 마셨는데 요즘은 그보다 좀 더 가격대가 있는 5~7만원, 또는 그 이상의 와인들도 기회가 된다면 구입해서 시간 있을 때 펑펑 따고 있군요. 이런 와인들은 마셔보면 왜 이런 가격대가 책정되는지, 그리고 왜 좋은 와인인지 알게 되는 것들도 있고 생각보다 만족감이 덜한 것들도 있는 등 마셔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위스키도 그렇지만 와인들도 여러 상표, 여러 포도 종류의 와인들을 마셔보는 것도 상당히 매력적이군요.

오늘 이야기하는 와인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상표의 하나인 돈나푸가타(Donnafugata), 그 중 세다라(Sedara)라는 이름의 와인입니다.

이탈리아의 와인은 프랑스의 와인들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와인들에 비해 배우기가 가장 어려운 종류라 생각합니다. 와인 생산지 지역별로 구분이 확실하고 사용하는 포도의 종류에도 정확한 기준과 등급이 존재하는 프랑스 와인 같은 경우, 얼핏 이름이나 종류가 헷갈릴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어지간히 알려진 포도밭이나 샤또, 주요 중간생산자인 네고시앙 등을 알아두면 대체적인 특성을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 밖에 미국이나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등의 신대륙 와인들은 주요 상표와 와인 산지들을 기억하기 훨씬 쉬운 편이기에 주로 유명한 상표들과 그와 관련된 와이너리 등을 알아두면 대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지요.

그런데 이탈리아 와인은 시작부터 막막하기 그지 없습니다. 무엇보다 포도의 종류부터 흔히 쓰이는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등 뿐 아니라 수많은 이탈리아 고유의 토착 품종을 사용하는데다 그 이름조차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종류가 많습니다. 거기다 와인 이름부터 난해하기 그지 없는 것들도 많고 어디까지가 와인 이름이고 어떤게 와인 생산자 이름인지, 그리고 어떤게 등급을 나타내는 것인지조차 헷갈리는 경우도 많고, 거기다 어떤 와인의 끼안띠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와인과 또 다른 상표의 끼안띠 클라시코 와인이 있다고 해도 이 둘이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곤 할 수 없는게 또 이탈리아 와인입니다. 와인 자체의 생산량도 생산량이지만 그 가짓수로 따지면 이탈리아 와인의 종류를 따라올 수 없다고 할 만큼 수많은 와인들이 있는 만큼 이탈리아 와인의 전부를 마셔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럼에도 이러한 이탈리아 와인들도 익숙해지려면 많이 마셔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책자를 넘기며 지역과 포도 종류, 상표와 주요 생산자를 줄줄이 외운다고 해도 마셔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으니 말이지요. 아무리 책에서 "이러이러한 포도로 만든 와인은 이러이러한 맛이 난다."라고 설명되어 있어도 실제로 그 와인을 마시고 그러한 감상을 느낄 수 있는지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뭔가 이야기가 샜습니다만 오늘 이야기하는 돈나푸가타라는 상표는 그러한 난해한 이탈리아 와인들 중에서도 기억하기 쉬운 종류의 상표입니다.

Donnafugata... 이 돈나푸가타는 이탈리아 본토가 아닌 지중해의 열정의 섬이라고도 하는 시칠리아 섬에 있는 와이너리입니다. 지중해성 고온 건조한 아열대성 기후가 나타나는 섬인 만큼 이 돈나푸가타의 와인들은 매우 밝은 이미지와 힘찬 느낌이 드는 와인이 많습니다.

그나저나 돈나푸가타라는 이 이름은 우리나라 말로 부르면 특별한 뜻은 느껴지지 않지만 굳이 말하자면 "도망친(fugata) 여자(donna)"라는 뜻이라 합니다. 라벨에서 볼 수 있는 돈나푸가타의 상표 역시 이 이름처럼 한 여성의 모습이 나타나 있지요.

그 이름처럼 머리를 풀어헤치고 "도망친 여자"가 표현된 이 상표의 모델이자 "돈나푸가타"라는 이름의 실제 모델은 과거 프랑스의 왕비였던 마리아 카롤리나(Maria Carolina)라고 하는군요. 1800년대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페르디난도 4세의 왕비였던 마리아 카롤리나는 프랑스 대혁명과 1806년 나폴레옹의 공격에서 도망쳐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피난을 오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바로 이 피난처로 오게된 곳이 오늘날 돈나푸가타 와이너리의 포도밭이 위치한 곳이었다 하는군요.

이 이야기는 훗날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작가인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Giuseppe Tomasi di Lampedusa)의 소설인 『레오파드(Il Gattopardo, The Leopard, 들고양이)』에서 이 마리아 왕비가 도망쳐온 지역에 "Donnafugata"라 이름 붙였다 하며, 오늘날의 돈나푸가타라는 와인 회사는 이 이름에 영감을 얻어 명명한 것이라 하는군요.

오늘날의 돈나푸가타는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와이너리의 하나이며 이곳에서 생산하는 와인들의 이름은 리게아(Lighea), 탄크레디(Tancredi), 세다라(Sedara) 등 바로 이 회사명의 기원이 된 『레오파드』의 등장인물에서 따온 것도 있고 세라자데(Sherazade), 밀레 에 우나 노떼(Mille e una Notte, 천 하루의 밤) 등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따온 것도 있는 등 이름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거기다 라벨에 그려진 매력적인 그림들과 이름들의 절묘한 조화, 그리고 이미지에 맞게 떠오르는 와인의 맛이 어울려 돈나푸가타의 와인들은 그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라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돈나푸가타 세다라는 소설 『레오파드』의 여주인공인 "안젤리카 세다라"의 성을 딴 것입니다. 라벨에 표현된 건물은 돈나푸가타의 와인 셀러의 모습이라고 하는군요.

이 와인에 사용되는 포도는 네로 다볼라(Nero d'Avola)라고 부르는 시칠리아 특유의 품종으로, 이를 이용해 만든 와인은 다소 알코올 도수가 높고 질감이 있고 산미가 있는 와인이 나오게 됩니다. 단일 품종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메를로나 기타 품종을 혼합하여 와인을 만들기도 하는군요.

제가 이제까지 마셔본 돈나푸가타는 오늘 이야기하는 세다라, 네로 다볼라와 쉬라를 혼합한 세라자데, 네로 다볼라와 메를로를 혼합한 앙겔리 셋 뿐이군요. 돈나푸가타의 와인들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특히 매력적인 이야기가 있는 와인들이 많은 만큼 차후 다른 와인들도 마셔보려 합니다.

잔에 한 잔...
사진으로는 꽤 진한 색상이고 실제로도 짙은 색상이지만 까베르네 소비뇽이나 쉬라 와인 등의 진한 색상과는 조금 다른 살짝 투명하면서도 밝게 빛나는 색상을 보입니다. 잔에서 피어오르는 향은 마치 담배향과도 비슷한 어딘가 마른 풀 같은 향이 있지만 한편으론 향긋한 들꽃 같은 부드러운 향도 느껴집니다. 가만히 한 모금 머금으면 입 안에 가득 차오르는 신선한 체리향과 부드러운 질감이 기분 좋게 느껴집니다. 까베르네 소비뇽의 블랙 커런트나 검은 자두 같은 질감과는 다른 가볍고 상큼한 붉은 체리와 살짝 후추 같은 스파이시함이 느껴지고 무엇보다 매우 "힘차다."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전체적인 질감은 미디엄 바디를 살짝 넘는 정도의 느낌이지만 향과 맛이 강렬하고 힘차게 느껴져 실제로 느껴지기는 그 이상의 질감과 경쾌함이 느껴지는 맛입니다.

이 와인은 그냥 마셔도 충분히 맛있지만 산미가 약간 있는 만큼 토마토 파스타와 특히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아니면 담백한 모짜렐라 치즈 같은 것과도 아주 잘 맞을 것 같군요.


이 세다라의 수입사 책정 소비자가는 4만 3천원이지만 구입처에 따라선 3만원대에도 구하실 수 있습니다. 시칠리아 섬의 힘찬 와인, 그리고 돈나푸가타의 모든 레드 와인은 네로 다볼라 포도 품종이 기본으로 쓰이는 만큼 가장 기본품이라는 의미에서도 꼭 한 번 마셔볼 가치가 있는 와인이라 생각합니다.

덧글

  • SJ 2011/12/15 14:41 # 삭제 답글

    탕크레디는 가끔 와인바에서 지릅니다... 와인바에서 40유로 정도 하는데 둘이서 한병 사서 따먹고 기분내기 정말 좋죠... 시칠리아 와인은 포도가 강한 햇빛 아래서 자라서 그런지 맛이 힘차다 싶은데 탕크레디는 가격도 괜찮고, 무언가 기분내고 싶은 날에 같이 마시기 좋은 거 같습니다.
  • SJ 2011/12/15 14:49 # 삭제 답글

    이태리 와인은 결국 생산지역을 따라가는 것이 정석인 거 같습니다. 토스카나, 피에몬테, 베네토, 시칠리아, 풀리아... 지역을 알면 와인의 대체적 특성이 나오거든요. 대체로 이태리 남부지방 (풀리아나 시칠리아) 와인은 강한 햇빛 아래에서 포도가 자라서 그런지 맛이 비교적 "센" 편이고, 토스카나 와인은 맛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편인데다 Chianti Classico, Rosso/Brunello di Montalcino, Vino Nobile di Montepulciano 등 토스카나의 소지역별로 자기 동네 와인 중 "고급"에 속하는 레이블을 따로 부여하기 때문에 어떤 레이블이 붙으면 이게 어느 등급인지 구분하기 쉽습니다. 이태리 와인도 프랑스 따라간다고 IGT (테이블 와인), DOC, DOCG 순으로 등급도 붙이긴 하는데 요즘 이 등급 체계가 흐트러진게 수퍼 토스카나급 (프랑스 포도를 토스카나에 심어서 와인을 만들었더니 엄청난 작품이 나오더라는...) 와인들 중에 IGT 등급 붙은게 꽤 있거든요... 이래저래 이태리는 "체계"랑 거리가 먼 나라지 싶습니다... ㅎㅎ

    북쪽 피에몬테나 베네토 지방은 비교적 깔끔한 편인데 Barolo나 Amarone같은 레이블이 붙으면 믿고 살만 한 거 같습니다.
  • NeoType 2011/12/15 15:33 #

    SJ 님... 좀 더 자금에 여유가 있으면 다음엔 탄크레디를 사볼까 합니다.^^

    이탈리아도 막상 파고 들면 말씀하신대로 피에몬테, 토스카나, 베네토, 시칠리아 정도가 쉽게 기억하기 좋지요. 피에몬테의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그리고 모스카토 다스티 같은 와인들, 토스카나의 끼안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비노 노빌레 같은 종류, 베네토의 바르돌리노와 발폴리첼라, 소아베, 아마로네 같은 종류... 여기서 몇몇 유명한 생산자나 와이너리 등만 알아둬도 유명한 것들은 한 차례 훑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들을 여러 가지 접해보고 싶지만 가격대도 가격대인데다 은근히 "이탈리아의 부르고뉴"라는 이미지도 있는 만큼 그리 쉽지 않더군요; 그나마 가야 안젤로의 브루넬로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아까워서 못 따고 있습니다;
  • SJ 2011/12/16 00:23 # 삭제 답글

    저도 Brunellos di Montalcino는 1년에 1번 살까말까 합니다.. ^^; 개인적으로는 Castello Banfi나 Loacker에서 나온 제품들이 괜찮더라구요...
  • NeoType 2011/12/17 11:12 #

    SJ 님... 주요 생산자들은 전부 알진 못해도 개인적으론 조만간 Antinori와 Piccini의 브루넬로를 구입해보려 합니다. 뭐, 결국 언젠간 여러 가지 마셔볼 수 있겠지요.^^
  • SJ 2011/12/22 00:59 # 삭제 답글

    Antinori는 몬탈치노 와이너리 중에서도 명품 반열에 속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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