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요일. 그야말로 굉장히 오랜만에 맞는 평온한 날입니다.
최근은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평일은 말할 것도 없고 주말에도 바쁘게 뛰어다녔는데 오늘은 정말 최근들어 가장 평온한 날이라 이렇게 느긋히 글을 쓸 여유가 생겼군요.
오늘 이야기할 술은 스카치 몰트, 그중에서도 제가 아주 좋아하는 상표인 맥켈런(The Macallan)입니다.
맥켈런 중에서도 셰리 오크(Sherry Oak) 18년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맥켈런 12년이 40도이지만 18년은 조금 높은 43도이고 용량은 700ml입니다.
The Macallan... 어쩐지 이 상표는 제게 있어 여러 가지로 특별한 느낌이 드는군요. 처음으로 제가 접한 싱글 몰트 위스키이기도 하고 대학 때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큰 마음 먹고 구입한 녀석이기도 합니다. 거기다 "위스키"라는 술에 대한 제 이미지를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은 술이기도 하기 때문이군요.
무엇보다 맥켈런이라는 상표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그 맛에 있습니다. 세계적인 위스키 테이스터들이 "싱글 몰트의 롤스로이스(The Rolls-Royce of Single Malts)"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 부드러움과 맛은 오늘날의 맥켈런이라는 명성을 얻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술이든 맛이 중요하지만 이 맥켈런만큼 한 번 마셔보면 그 맛에 매료되는 술도 드문 것 같습니다.
이 맥켈런은 그 이름대로 스코틀랜드 하이랜드(Highland)의 스페이사이드(Speyside)에 위치한 크레이갈라치(Craigellachie)의 맥켈런 증류소(Macallan Distillery)에서 만들어집니다. 맥켈런은 스페이사이드의 오래된 증류소 중 하나로 글렌리벳(The Glenlivet)과 더불어 최초로 위스키 제조 허가를 받은 증류소라 합니다. 본래 이 증류소에서는 허가를 받기 전부터 위스키를 제조해왔지만 정식 허가를 받은 1824년을 맥켈런의 시작의 해로 삼았다고 하는군요.
맥켈런 공식 홈페이지에 의하면 오늘날의 맥켈런의 명성은 이러한 6가지 요소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는군요.
1. The Spiritual Home - 정신적인 고향. 1700년도에 세워진 맥켈런 증류소 인근의 이스터 엘치스 하우스(Easter Elchies House)와 그 주변의 산과 들, 강이 맥켈런을 만드는 환경이라 합니다.
2. Curiously Small Stills - 작은 증류기. 스페이사이드의 증류소들 중 맥켈런의 증류기는 그 크기가 가장 작은데 이로 인해 훨씬 풍부하고 묵직한 질감의 위스키가 만들어진다 합니다.
3. Finest Cut - 최적의 "Cut". 여기서 "Cut"이란 위스키를 증류하고 그 증류기에서 술을 숙성시킬 통으로 옮기는 양, 즉 "잘라내는 양"을 말합니다. 위스키는 최초 맥아로 만든 원주(原酒)를 증류시켜 이를 나무통으로 옮겨 숙성시키는데 증류시킨 술 전체를 통에 나눠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증류되어 나오는 술의 적절량씩 통에 담아 숙성시킨다 합니다. 모든 술을 통에 담아 숙성시키는 것이 아닌 선별적으로 좋은 술을 받아 숙성시키는 것인 만큼 맥켈런 증류소에서 증류되는 위스키 원주의 약 16% 정도만이 통에 담겨 위스키로 만들어진다 하는군요. 이러한 "Cut" 기술은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증류소 중에서도 맥켈런 증류소가 단연 최고 수준이라 하는군요.
4. Exceptional Oak Casks - 선별한 오크통. 일일이 손으로 제조한 오크통을 선별하여 이를 이용해 위스키를 만든다 합니다.
5. Natural Color - 자연적인 색. 착색을 하지 않은 오직 나무통과 원주만으로 만든다 합니다.
6. Peerless Spirit - 완벽한 원주.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위스키를 위해 모든 통들을 주의깊게 살펴 통에서 꺼내 병입할 적절한 시기를 찾는다 합니다.
오늘날 맥켈런은 크게 두 가지 종류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맥켈런의 고전적인 스타일인 셰리통을 이용해 숙성시킨 "셰리 오크(Sherry Oak)", 다른 하나는 2004년도부터 판매를 시작한 "파인 오크(Fine Oak)"입니다.
먼저 셰리 오크는 전통적인 맥켈런 제조 방법으로 만들어 온 상품으로 오늘 이야기하는 맥켈런 18년 역시 셰리 오크 숙성입니다. 셰리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강화 와인(fortified wine)으로 식전주로 유명한데 맥켈런 셰리 오크는 바로 이런 셰리를 숙성시켰던 통을 스페인에서 가져와서 여기에 위스키 원주를 담아 숙성시킨 것입니다. 이때의 셰리통은 내부를 한차례 그을린 오크통이었고 셰리 와인 특유의 풍미가 배어있어 셰리 오크 맥켈런은 진한 호박색을 띠고 마치 초콜릿과도 비슷한 달콤한 향과 오렌지와 같은 산뜻한 과일향을 갖게 됩니다.
파인 오크는 셰리를 숙성시켰던 스페인 오크통, 셰리를 숙성시켰던 미국 오크통, 마지막으로 버번을 숙성시켰던 오크통을 이용해 세 차례 숙성시킨 독특한 상품입니다. 기존의 셰리 오크와는 다른 부드러운 맛을 특징으로 하는데 요즘은 이러한 파인 오크 상품을 시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셰리 오크 맥켈런과는 달리 같은 숙성년도라도 색상의 훨씬 옅습니다. 저는 아직 이러한 파인 오크 맥켈런은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으니 이에 대해선 언젠가 마셔본 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또한 맥켈런은 블렌디드(blended) 스카치 위스키인 페이머스 그라우스(The Famous Grouse)의 원료 중 하나로 쓰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군요.
예전에 이 페이머스 그라우스에 대해 길게 이야기해 본 적이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어쨌거나 이 페이머스 그라우스는 맥켈런을 비롯한 몇 개의 증류소의 위스키 원주를 이용해 독자적인 비율로 블렌드하여 숙성시킨 상품으로 블렌디드 스카치지만 맥켈런과 상당히 비슷한 인상이 있습니다. 특히 12년은 "스코틀랜드의 실크(Silk of Scotland)"라는 별명도 있는 만큼 꼭 마셔볼만한 가치가 있는 술이라 생각합니다.
모처럼이니 두고두고 아끼는 녀석인 12년을 잠깐 꺼내봅니다. 이것도 셰리 오크 숙성품이군요. 한 병을 사서 두고두고 아껴 마시고 있는데 이제 약 1/5 정도만이 남아있습니다.
이 맥켈런은 제가 처음으로 접해본 싱글 몰트 위스키인데 그전까지는 조니 워커, 커티 샥, J&B 등의 블렌디드 스카치만을 마셔봤었군요. 그때의 스카치 위스키에 대한 제 이미지는 "나무향 같은 것이 나는 짜릿하니 강렬한 술"이라는 단순하기 그지 없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큰 마음을 먹고 구한 이 맥켈런을 잔에 따라 한 모금 마셔본 순간, "위스키라는 것이 이렇게나 부드러울 수 있구나!"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군요. 처음으로 마셔보는 부드럽고 향긋한 맛, 달콤한 풍미 등 가히 새로운 세계를 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스카치에 대한 이미지가 확 바뀌었고 어째서 몰트 위스키를 최고로 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었습니다만 18년을 잔에 한 잔...
잔에 따라두면 강렬히 퍼지는 달콤한 향... 이제까지 자주 즐기던 12년과 비슷한 느낌이군요.
잠시 비교를 위해 두 잔을 따랐습니다. 왼쪽이 12년, 오른쪽이 18년입니다.
사실 이 둘은 얼핏 봐선 색으로 구분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나란히 놓고 자세히 들여다봐도 어느 쪽이 18년인지 알 수 없군요. 물론 확실한 방법이라면 직접 향을 맡고 마셔보는 것입니다.
먼저 12년을 코앞으로 가져가면 특유의 달콤한, 마치 초콜릿이나 바닐라와 같은 향이 퍼지고 신선한 과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잔을 기울여 조금 입에 머금고 굴리면 40도의 술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운 촉감과 산뜻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분 좋은 맛입니다. 질감은 12년이라는 숙성기간이 일반적인 스카치들이 딱 마시기 좋은 기간임을 생각하면 여타 상표들에 비해 묵직하게 혀에 감기는 편입니다. 맛, 향, 질감에 있어서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만족감이 느껴지는군요.
다음으로 18년을... 이쪽은 당연히 숙성기간이 긴 만큼 12년에 비해 다른 맛이 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러한 선입견을 버리고 향을 맡아보면 12년과는 인상이 사뭇 다릅니다. 이쪽은 향에서부터 달콤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12년에 비해 느껴지는 인상이 강렬하군요. 특유의 달콤하고 과일과도 같은 신선함은 분명 12년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숙성기간에서 오는 진한 나무향과 스모키함 덕분에 한층 복잡한 향이 나는군요.
한 모금 가볍게 머금고 굴려보면 이러한 강렬한 인상이 더욱 확실히 느껴집니다. 부드러움과 달콤한 풍미에 진한 나무향이 더해져 12년에 비해 훨씬 복잡한 맛이 나는군요. 어떻게 보면 가볍게 마시기 좋은 부드러운 맛이 취향인 사람이라면 12년쪽이 더 마시기 좋을 수도 있습니다. 18년은 좀 더 맛이 강해 술쪽에서 먼저 이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군요. 18년이 이 정도라면 이보다 더 숙성이 된 25년 이상의 맥켈런들은 어떤 맛이 날지 참 궁금해집니다.
시중에서 12년의 가격대는 약 6~8만원 내외, 그리고 18년은 이번에 13만원 정도에 구입했군요.
부드러운 맛과 향, 마신 후 남는 만족감으로 가히 이 자체를 "명품"이라 부르고 싶은 술입니다. 싱글 몰트의 첫 입문뿐 아니라 평생을 두고 즐겨도 후회가 없을 술이라는 느낌이군요.